강정규 연재동화

강정규 연재동화 (2001. 8)

별이 된 다람쥐(1)

옛날 옛날 옛적에
깊은 산 속에,
다람쥐 한 가족이
살았습니다.
인정 많고 부지런한
늙은 부모와,
아름다운 마음씨의
열 두 공주가
평화롭고 화평하게
살았습니다.
도토리 상수리 너도밤나무,
먹을 것도 많고
기후도 좋아,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습니다.
아들 하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앞 못 보는 큰딸이
불쌍했지만,
동생들은 언니를 보살펴 주고
효성이 지극하여 화목했어요.

봄이면 산 언덕에
진달래 피고,
마을 앞을 강물이
흘렀습니다.
일하다 땀 흐르면
미역을 감고,
열매가 영글기를
기다리다가,
겨우살이 준비를
나섰습니다.
외나무 다리 건너
잣을 따다가
부모님 건강하게
봉양도 하고,
멧새 우는 달밤이면
노래도 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도 췄지요.
보름보름 달밤에
알밤 줍는 다람쥐.

우리 마을 복된 마을
먹을 것도 많아,
알밤인가 하고
상수리도 줍고,
알밤인가 하고
도토리도 줍고,
삼단 같은 머리채를
흔들거리며
예쁜 처녀 다람쥐들
노래 부르고,
바위 위에 걸터앉은
늙은 부모는
흥겨워 손뼉치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깊은 산골 이 밤나무골에, 어느 날 어디선가 허우대가 멀쩡한 다람쥐 한 마리 가 나타났구나.
어디서 떠돌아다니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굴러들어왔는지 모를 이 다람쥐는, 강 건너 언덕 위에서 몇 날 며칠을 두고 이쪽 밤나무골을 건너다보며 앉아 있었단다.
몸뚱이가 커다랗고 기운차게 생긴 이 다람쥐는, 수염이 길다랗고 부리부리한 두 눈에서 빛이 났단다.
쭉 찢어진 입 안에서 길다란 혓바닥이 나오더니, 몽툭한 발바닥에 침을 바르는구나, 글쎄. 침 바른 발바닥으로 세수를 하고, 알록달록 무늬진 꼬리털을 빗질 한 다람쥐는, 반지르르 윤기 흐르는 늘씬한 허리를 한번 굽혔다 펴더니 드디어 행동을 시작했단다.
강 건너 밤나무 숲 속에서는 이제 열두 마리의 다람쥐들이 강강수월래를 노래하며, 빙글빙글 손에 손을 잡고 돌아가고 있었단다.
밤은 깊어 늙은 부모네는 굴 속으로 들어가고, 노래하며 춤추는 다람쥐들을 내려다보며 달 님은 빙그레 웃고 있었구나.
알록달록 무늬의 다람쥐는 기회는 이때라고 생각했단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다람쥐는 언 덕 위에서 팔짝 뛰어내리며 재주를 넘었지. 재주를 한 번 넘고 난 다람쥐는, 수염을 쓰다듬고 머 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점잖은 걸음으로 외나무 다리를 건너갔단다.
다리 아래로 수은처럼 빛나는 강물이 흐르고, 그 속에 달이 하나 가라앉아 있었지. 구름도 한 장 흘러가고 있었어.
꼬리를 곧추세우고 다리를 건너간 다람쥐는 상수리 나무 위로 쪼르륵 올라갔어. 상수리나무 가지 위에 앉아 내려다보니 눈 아래서 맴을 돌며 노래하는 다람쥐들이 더더욱 아름답게 보였단다. 넋을 잃고 그 모양을 내려다보던 다람쥐가 그만 잘못해서 땅바닥으로 떨어졌구나. 커다란 몸뚱이 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다람쥐들은 그만 혼비백산 모두 흩어져 도망가 버렸지.

아이고 엉덩이야,
아이고 허리야.

며칠을 두고 궁리했던 묘책을 쓰기도 전에 산통이 깨져 버린 다람쥐는, 자빠진 김에 쉬어 가자는 식으로 아예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어.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엉덩이야.

알록달록 무늬의 다람쥐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지.

아이고, 아이고,
나 좀 살려 줘요.

다른 다람쥐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아직까지 그 자리에 머뭇대며 남아 있던 한 마리의 다람쥐 가 더듬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어. 그러자 나무 위에서 떨어진 다람쥐는 더더욱 죽는 시늉을 하며 엄살을 떠는 거야.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나 죽어.

엄살을 떨다 못해 대굴대굴 구르며 소리를 질렀지.

이를 어쩌나, 많이 다치셨어요?
더듬거리며 다가온 다람쥐가 물었어.
그게 바로 눈먼 언니였단다.
아이고 나 죽네, 허리가 부러졌나 봐.

알록달록 무늬의 나무에서 떨어진 다람쥐가 다시 죽는 시늉을 했단다.

얘들아, 이리 좀 나와 봐.

언니가 동생들을 소리쳐 불렀어.

얘들아, 빨리 좀 나와 봐.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많이 다치신 모양이구나.

눈먼 언니는 울상이 되어 동생들을 부르고, 나무에서 떨어진 다람쥐는 계속해서 엄살을 부렸 지. 나무 뒤에 숨거나 숲 속에 몸을 감추고 이쪽을 살펴보던 동생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모여들 기 시작했어.

우리 이 분을 모셔다가 간호해 드리자꾸나, 우리들이 너무 수선을 떨어서.

눈먼 언니가 말했어. 동생들은 별 말 없이 낯선 다람쥐를 부축하여 자기네 굴속으로 데려갔지. 그리고 정성을 다하여 간호했단다.
온 가족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누워 앓던 꾀쟁이 다람쥐는, 어느 날 툭툭 털고 벌떡 일어났단 다. 그리고 기운차게 집안 일을 도왔지. 그러는 동안 모든 식구들과 정이 들었고, 이제는 단 하루 도 헤어져서는 살 수 없이 되고 말았지.
늙은 부모는 결심했단다.
품 안에 있을 적에나 자식이지, 제 길로 다 자라면 소용 없는 법, 어서들 쫓아가서 잘들 살 거라.
눈 멀어 앞 못 보는 큰딸이 걱정이었지만, 늙은 부모는 작정했단다.

여보게.
예?
내 딸들 부탁하네.
고맙습니다.
끝네야, 잘 살아라.
엄마, 안녕.
막내야, 잘 살아라.
예, 어머님.
열째야, 잘 살아라.
걱정 말아요, 어머님.
아홉째야, 잘 살아라.
그럼요, 어머님.
여덟째야, 잘 살아라.
잘 살게요, 어머님.
일곱째야, 잘 살아라.
물론이지요, 어머님.
여섯째야, 잘 살아라.
종종 찾아뵐게요, 어머님.
다섯째야, 잘 살아라.
염려 마세요, 어머님.
넷째야, 잘 살아라.
건강하세요, 어머님.
셋째야, 잘 살아라.
안녕히 계세요, 어머님.
둘째야, 잘 살아라.
네, 어머님.
큰애야, 잘 가거라.

늙은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눈먼 큰 딸을 불렀단다.

네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 인사 받으세요.

눈먼 큰딸은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는구나. 열한 명의 동생들도 언니를 따라 큰절을 했단다.
신랑이 의젓하게 다가오더니 눈먼 언니를 덥석 안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갔단다. 그 뒤를 열한 명의 신부들이 줄줄이 따라가고 있었지. 다리 아래로는 흐르는 물 속에 달이 잠기고, 구름 한 점 이 떠가고, 한 줄로 다리를 건너는 다람쥐네 신혼 행렬이 거꾸로 비치고 있었지.
신랑 등에 업힌 큰언니가 울고, 그 뒤를 따라가는 열째가 울고, 아홉째 여덟째 일곱째가 울 고, 여섯째 다섯째 넷째가 울고, 셋째 둘째 뒤에 막내와 끝네가 쫓아가며 눈물을 뿌렸단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