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0. 12)

아버지의 향기



(14)

"인규야, 가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애는 왜 데려가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나 둬라, 어느 변소깐인지두 알어야 헐 일이구, 뭐시냐 모처럼 부자간이 나들이 허게."
할머니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기차를 타고, 동포 정거장에 내린 아버지와 나 는 우선 화장실로 갔다.
"워디냐?"
"이 칸유."
"여긴 숙녀용이 아녀?"
"그래유. 그래두 이 칸유!"
아버지가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목을 빼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사이 변소 속 이 그득해졌다. 아버지는 담배 한대를 피우고 나서 주머니에서 노끈 뭉치를 꺼내셨다.
"이걸 잡고 여기 서 봐라."
아버지는 한쪽 끝을 쥐어 주시고 노끈을 풀어 변소 넓이를 재셨다. 세로 재고, 가로 재고, 수첩에다 숫자를 적으셨다. 아버지는 노끈에다 못줄같이 표시를 해서 길이를 잴 수 있도록 마련해 오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주머니칼로 노끈을 적당히 끊으시고 그 끝에 돌을 메다셨 다. 이제 깊이를 재실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돌멩이를 매단 노끈을 들고 변소 안으로 들어 가셨다. 그리고 돌멩이를 변소 구멍 속에 떨어뜨렸다. 들었다 놨다 툼벙거려, 돌멩이가 변소 바닥에 닿도록 줄을 놓았다가 다시 건져 올렸다. 냄새, 구역질이 날 것 같았으나 아버지는 그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못줄 같이 표시해온 눈금을 읽으셨다. 일곱 개의 변소를 한 번 씩 드나들고 나서 그 깊이를 수첩에 적고, 이번엔 변소 뒤쪽으로 가서 똥을 퍼내는 구멍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구멍 속에 돌멩이를 던져 깊이를 가늠해 보셨다.
"뒤쪽이 더 깊구다 바닥이 경사진 모양여!"
아버지는 연필에 침을 발라 뒤쪽의 깊이도 수첩에 적었다.
"잉규야! 어디 너 계산 솜씨 좀 보자. 세로 가로 곱하면 넓이가 나오구 깊이를 알었응게 똥이 몇지게나 나올지 알 수 있겄쟈?"
"똥통의 부피도 계산해야쥬."
그러나 나는 수학이 빵점이었다.
"여기 뭐 허슈?"
그때 모자 쓴 조역이 다가와 아버지에게 물었다.
"똥이 얼마나 들었능가허구 조사 좀 했구먼유."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조사유? 왜유?"
나는 퍽하고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