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이 일파만파입니다. 정치권과 권력기관, 문화계, 예능계, 교육계, 종교계 등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그 끝이 어디일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미투’ 운동이 지금 한국에서 동력을 얻은 것은, 일부 여성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자극받은 게 분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절대 권력이 해체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절대 권력은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변함없이 사회 각 분야에서 관성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렇게 관성화된 권력구조 아래서 약자 처지인 여성들은 필연적으로 권력자들의 노리개가 되었습니다. 저항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항했다가는 오히려 원인제공자, 무고자로 매도되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습니다. 같은 직장의 동료들은 불의를 곁에서 보면서도 침묵하거나 오히려 힘 있는 가해자편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최고 권력기관인 검찰 조직에서까지 젊은 후배 여검사를 마치 조선시대 관노처럼 여길 정도였으니 우리 사회의 약자 처지인 직장 여성들, 이주여성 노동자들은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습니다. 불의를 떠받드는 절대 권력이 우리사회 구석구석 살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랬던 절대 권력이 지난 촛불 혁명에 의해 붕괴되면서, 아니,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됨으로써, 그동안 억눌렸던 분노와 자존감이 ‘미투’ 운동을 계기로 마그마처럼 분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절대 권력을 죄로 인식하고, 죽음으로 인식합니다. 로마서 강해로 유명한 칼 바르트는 죄에 대해서 말하기를, 죄는 피조자인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을 강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2016. 4호., ‘햇순’에서 재인용).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계로 묶여 있어야할 정신적인 띠를 끊어버리고, 그 근원을 망각한 상태에서 자신과 하나님을 나란히 세우려 하는 게 죄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서 버림받은 분, 고통당하시는 분, 부정된 분으로 기억됩니다. 죄는 인간이 하나님을 부정한 것이니 그 자체로서 권력입니다. 그것도 죽음의 권력입니다. 이 죽음의 권력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끊임없이 짓밟는 일을 합니다. 특히 연약한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욕정의 배설은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쓰러뜨리고’ ‘눕히고’ ‘배설하는’ 행위는 일종의 승리의식입니다. 우리사회 각 분야의 성폭력은 그렇게 관성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추한 모습이 지금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랑의 온전성을 말했지만, 죄악은 숭고한 사랑까지도 욕정의 자양분으로 삼습니다. 바로 이 단계에서 바울의 죄에 대한 인식이 놀랍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와 왕 노릇 한 것처럼 한 분 예수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라”(롬 5:17). ‘왕 노릇’은 단순히 문학적인 서술이 아닙니다. 왕은 타협할 수 없는 절대 권력에 대한 언표입니다. 왕의 권력은 쉽게 소멸되지 않습니다. 바울의 언표대로 첫째 아담의 불순종은 둘째 아담의 순종으로 부정될 때 비로소 본래 아담의 모습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에 의해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내가 부정됨으로서만이 나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아담 안에서” 라는 말 반대편에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을 놓은 이유입니다. 인간은 본시 피할 수 없는 죄의 유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지 않기 때문에 죽습니다. 병들어 죽는 게 아니라 병을 치료하지 않기 때문에 죽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요한 역시 유대인들의 죄악을 논증하면서 바울과 유사한 논법을 쓰고 있습니다.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다]”(요 8:23). ‘아래’와 ‘위’는 ‘죽음’과 ‘생명’에 대한 은유입니다. 무엇보다 ‘났다’는 표현이 함유하는 것은 융화될 수 없는 두 세계 곧 왕으로서의 두 권력입니다. ‘아래’는 죄악의 권력으로 반듯이 죽게 될 운명입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는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마침내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스스로 아래서 났음을 증명한 것이지요. 죄가 그렇게 무섭습니다. 죽음의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력이 해체되는 시대에 승자의 특권으로 여긴 죽음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고 살 길은 없습니다. ‘미투’ 운동의 과녁에서 회피하려는 얄팍한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추악한 승리의식을 뉘우치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만이 그나마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