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대공원에서 공개한 동영상입니다. 아직 채 한 살이 안 된 아기코끼리는 엄마코끼리와 놀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게 됩니다. 놀란 13살의 엄마 코끼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건너편에서 이를 목격한 36살의 이모 코끼리가 재빨리 달려와 초보엄마코끼리를 이끌고 물속으로 들어가, 곤경에 처한 아기 코끼리를 물이 얕은 쪽으로 밀어내 구해내는 게 아닌가! 코끼리들의 가족 간의 유대가 남다르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경험 많은 이모 코끼리가 초보엄마와 협력해서 위기에 처한 아기코끼리를 구해내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침팬지나 여우는 인간보다 더 영리하고 손놀림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침팬지나 여우가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 유연하게 협력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협력하기는 하는데 ‘유연하게’ 협력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개미는 동료 간에 일사분란하게 협력은 해도 새로운 사회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일벌들 역시 개미 못지않게 협력하지만 못된 여왕벌을 단두대에 세우지 못합니다. 그들의 세계에서 ‘촛불혁명’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침팬지와 코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이 수많은 포유류 가운데서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침팬지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손놀림이 민첩해서가 아니라, 여럿이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기 때문이라고.

유발 하라리의 견해대로라면, 가까운 친족 외에 협력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수준이 침팬지나 코끼리 정도일 것입니다. 친족만이 아닌 낯선 사람과도 폭넓게 협력하는 사람이 사회를 통합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정 혹은 자기가 속한 조직에 충성하는 것은 분명 미덕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의 충성이 자기가정이나 자기가 속한 조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을 못합니다. 큰 사회조직을 운영하려면 자연히 낯선 사람과도 폭넓게 협력해야 합니다. 새로운 이론, 새로운 제도, 새로운 인종과 문화, 새로운 개념 등과 유연하게 대응하고 협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라리의 ‘유연하게’ 라는 표현은 ‘폭넓게’라는 표현보다 더 함축적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관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은 유별나게 혈연, 지연, 학연 등의 폐쇄적인 유대가 강고한 나라입니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법조계, 문화계, 학계, 종교계를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여-야가 어떻게든 상대를 물어뜯어 쓰러뜨리려는 모습을 TV에서 수시로 봅니다. 지성의 전당이라 할 대학에서조차 연고주의는 고질병입니다. 재계의 경우 기업 오너의 연고가 모든 의사결정과 이익을 독점하는 구조입니다. 규모로는 이미 세계적임에도 실상은 폐쇄적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많은 모순을 드러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다양성에 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예컨대 미국의 실리콘벨리는 우리 식의 집합적인 개념의 공단이 아닙니다. 그곳은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와 가치들 그리고 다양한 기술들과 유연하게 협력하는 거대한 지구촌의 자궁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축적된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새로운 기술, 새로운 가치, 새로운 부를 창출해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유연하게’ 협력하는 오늘의 실리콘벨리에서 새로운 미래 세계를 보면서 “이전 세대들이 평화를 일시적인 전쟁 부재의 상태로 생각했다면, 지금 우리는 평화를 전쟁을 생각하지 않는 상태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이런 ‘새로운 평화’는 그저 히피들의 판타지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대한민국의 각 분야는 그런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낯선 사람, 낯선 개념들 그리고 실패의 경험과도 유연하게 협력할 줄 모르면, 새로운 미래를 열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금 남과 북의 물리적 분단이 서로를 원수로 여기는 정신적 분단으로까지 고착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병적으로 굳어버린 분단의 한복판에서 평화는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원수와도 유연하게 협력하는 데서 성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그런 변화가 절실합니다. 적을 원수로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평화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