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이사야의 말씀을 보면서 절로 울적했습니다. 그토록 쓰라렸던 바빌론 포로생활은 70년 만에 끝이 나고, 조국으로 귀환하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는데, 대한민국은 분단 70년이 되었음에도 통일은커녕 소통조차 막혀 있으니 지금 우리의 처지가 저 옛날 외골수 유대인들보다 더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한쪽은 봉건시대에나 있을 법한 ‘최고 존엄’이라는 유치한 언사로, 다른 한쪽은 ‘통일대박’이라는 물신만능의 정치구호로 우리의 미래를 기망하고 있습니다. 물론 남과 북의 통일만이 최고최선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들은 순혈주의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제 동포를 형제애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대한민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느냐’며, ‘종북’을 들이대는 자들에게 남과 북의 평화 공존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어떤 이는 광복70주년을 회상하며 ‘대한민국의 기적’을 말하기도 합니다. ‘참혹한 전쟁을 치렀고 민주화의 아픔과 IMF사태 등 온갖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동안 우리의 국내총생산은 1000억배 이상 증가했다’는 감탄입니다. 분명 수치로만 보면 기적도 이만저만한 기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기적의 당사자들이 분단 70년이 됐음에도 남과 북이 소통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불가사의한 기적일 것입니다.

이사야는 외골수 유대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영광이 ‘멀리 떨어진 섬들’에게까지 선포되고, 그들 가운데서도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뽑혀질 것이라고 놀라운 말을 쏟아냅니다. 그깟 순혈주의와 선민의식 별 것 아니라며, 세계 모든 민족이 거룩한 예배 공동체가 될 것을 바란 이사야야말로, 남과 북을 사상과 체제와 경제력으로 가르는 이들에게 함께 어우러질 동포로 받아들이라는 질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에게서도 놀라운 메시지를 접하게 됩니다.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 도시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계 21:22). 유대인의 영혼에 예루살렘성전은 세계의 중심이요, 우주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성전에만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예루살렘성전이라는 장소를 초월해서 하나님 자신이 성전이요, 어린양이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런 어린양의 성전은 더 이상 해도 필요 없고, 달도 필요 없고, 등불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인간이 강박적으로 절대화하는 것들, 그것들이 훼손되면 마치 반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핏발을 세우는 이념이나 신념들이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밤이 되어도 문을 닫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양의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넘쳐 강을 이루고, 강 가 기슭에는 생명 열매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함께 먹고 살아야 할 생명의 양식이 예루살렘성 안에만 쌓여 있지 않고 고르게 흐르는 세상. 그리하여 사람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고, 다툴 이유도 없는 세상입니다. 윤리 즉 그곳에 들어올 사람과 들어오지 못할 사람이 있음은 그 때문입니다. 속된 것과 가증한 것과 거짓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갑질’하는 자들, 돈만 아는 자들, 냉혹한 자들, 정의롭지 못한 자들, 사상 이념 출신성분으로 편 가르는 자들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번영한 국가라 할지라도 재물이 한군데로만 쌓인다면 ‘기적’이라며 자랑할 게 못됩니다.

우리는 지금 평화를 빼앗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애국’은 강조되지만 개개인의 소박한 행복은 유보되는 세상입니다. 재물은 많은데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집중되는 나라입니다. 권력은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없는 자에게는 가혹합니다. 참 고약한 세상입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미소를 잃지 않고, 마음을 편안케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 좋을 대로 세상의 제도와 강줄기를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굳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꾸실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제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바꿔주시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분단 70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분단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분단이 권력과 기득권의 방편으로 이용되는 비정상. 이제는 종식시킬 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