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012

 

 

 

 

 

 

 

 

 

 

 

 

  말씀과 삶의 뜨락

 

하나님께서 약자를 보호하는 방식

 

  말씀과 세상(59)

 

 

 

 

 

 

 

 

 





하태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이스라엘이 파죽지세로 가나안에 산재한 성들을 함락시킬 때입니다(수 9:3-27). 소문을 들은 그 땅 원주민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기브온 백성들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저들은 이스라엘과 싸워서는 승산이 없음을 알고, 속임수로 화친 맺을 계책을 세웁니다. 백성의 대표로 하여금 사신단을 꾸리고 마치 먼 곳에서 온 것처럼 남루한 옷차림과, 헤어진 전대와, 말라비틀어져 곰팡이 난 떡을 지니고 적진 안까지 여호수아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들었다며, 가져온 떡을 내밀며 화친을 청합니다. 이스라엘이 의기양양할 만한 언사를 늘어놓은 것이지요. 여호수아는 의심하지 않고 그들의 아첨하는 언사와 행색만으로 화친을 맺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저들은 이스라엘이 치고자 했던 기브온성 백성이라는 사실이 탄로 납니다. 하지만 이미 화친을 맺은 터라 기브온성을 치지 못하게 되자, 호전적인 병사들은 화가 치밀었습니다. 허술한 정보로 전쟁의 진로를 결정한 것도 문제이지만, 정복자로서 만끽할 쾌감과 노획물을 획득할 기회를 놓쳤으니 경솔하게 화친을 받아들인 이들은 영락없이 반역자로 몰리게 됐습니다.

여호수아로서는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일을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리하여 저들을 죽이는 대신 가장 낮은 신분으로 만들어서 백성들의 나무패는 일과 물 긷는 일을 하게 합니다. 죽이기로 예정된 적진 사람들입니다. 속인 것만으로도 죽일 만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런데도 그리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화친을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적들의 속임수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여한 자신들의 맹세에 대한 책임이 더 크다고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자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런 태도는 오늘날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심각한 갈등에 직면했을 때, 상대가 내게 어떻게 했느냐보다, 내가 그에게 어떻게 했느냐, 혹은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에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정의’는 이처럼 먼저 자신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데서 출발합니다. 불의는 반대로 행동합니다. 불의는 상대의 과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없는 과실까지 뒤집어씌웁니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집단과 부자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약자에 대한 부당한 행위 때문입니다. 발전한 민주국가는 ‘공권력’이 시민으로부터 신뢰 받는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공권력’은 어떻습니까?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입니다. 마땅히 약자를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용역 깡패를 앞세워서 폭력을 일삼으니 어찌 공포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부당한 행위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인류 역사는 약육강식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성서는 부단히 약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현하고, 약자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삶의 지표로 삼아왔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5:17-19). 성서가 이처럼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 사건을 신앙고백으로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이 하나님께서 약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시는 구체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사는가’입니다. 물론 약자를 배려하는 생활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바울은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처럼 허물 많은 죄인을 받아주신 것같이, 나도 내게 허물이 있는 사람을 동료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보다 앞서 구원의 복음을 지닌 이들은 약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살아야 하는가를 단호하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고. 저 옛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약자를 보호하신 방법은 오늘날도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자의 속임수보다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을 향한 화친의 맹세에 더 큰 책임을 부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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