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쌍둥이 형제인 에서와 야곱 이야기를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에서는 맏이로 태어나 아버지 이삭의 각별한 사랑과 기대 가운데서 자랐음에도, 사려 깊지 못한 처신으로 인해 족장의 자리를 동생인 야곱에게 빼앗기는 불운을 겪게 됐습니다. 그로 인해 족장들의 신앙의 역사는 물론 그리스도 공동체에서조차 에서는 실패자로, 야곱은 성공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서는 정말 실패자였는가?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추적해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가정을 이루고, 가업도 이루고, 12아들과 외동딸까지 얻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객지에 나가서 크게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 모든 식솔과 함께 고향땅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음에 칼을 품고 보복할 날을 기다리는 형 에서와의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무사히 가나안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가 가나안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으로부터 이어지는 족장의 기업을 실질적으로 물려받게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신앙의 역사 이야기는 야곱의 어린 아들인 요셉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요셉의 이야기에 앞서 한 장 전체를 할애하여 그 동안 잊고 지낸 에서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있는데, 그 번화함이 야곱과는 비교되지 않습니다. 에서의 수많은 후예들이 제 각기 족장이 되어 있고, 그들이 거느린 가솔과 차지한 땅은 하나의 나라에 버금가는 세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목해 보지 않아서 그렇지, 야곱이 크게 성공해서 돌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에서는 더 크게 성공한 것입니다. 야곱이 천신만고 끝에 겨우 자신의 가계를 일으켰다면, 에서는 큰 기업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돌이켜 보면 에서는 야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지녔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왜 이처럼 번창한 에서 이야기를 해놓고, 이어서 야곱의 연속으로 어린 요셉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믿음의 사람 야곱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세속의 관점으로 평가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役事를 세속의 성취에서 찾는다면, 당연히 에서를 모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관점에서 큰 기업을 일으키고, 재벌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사람, 다중의 인기와 열망을 받는 사람보다 더 크게 성공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일용직도 구하기 어려운 사람의 성공 모델은 적어도 10억 정도의 연봉은 받는 사람이어야 마땅합니다. 소위 실용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구하는 복이 그러하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믿음 이야기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한 야곱에 대해서 끈질기게 말하면서, 에서에 대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에서를 말할 때는 이스라엘의 가는 길을 가로막는 ‘고약한 에돔’으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에서의 후예가 바로 에돔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에서의 자손들은 수많은 족장들로 위세 당당한데, 요셉은 야곱의 12아들 가운데서도 이제 겨우 일곱 살인 코흘리개입니다. 성취의 관점에서 보면 게임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게임은 이제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에서의 화려한 성공을 흘러가는 배경으로 삼고, 요셉의 어린 시절 꿈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 엎드려 절을 하고, 하늘의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한다는 꿈입니다. 이 황당한 꿈 이야기는 형들에 의한 요셉의 배척을 예시하는 동시에, 이미 성공한 에서에 대한 대응이기도 합니다. 에서의 현실은 ‘이미’ 성취한 기반 위에 있었지만, 야곱의 현실은 ‘아직’도 어린 요셉의 꿈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이 그러합니다. 눈앞의 실리를 좇는 사람들에게 믿음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에서는 꿈보다는 실리에 충실했던 사람입니다. 실용적인 사람이요, 욕망하는 대로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성공을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에서는 강력한 매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신실하다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입으로는 ‘야곱의 믿음’을 말하면서 실제 행동은 에서가 이룩한 성공을 향해 달리고 있음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세속의 경이로운 번영을 뒤로 하고, 아직도 비현실적인 꿈 가운데 있다는 것, 형들의 시기 가운데 있다는 것, 초라하게, 세상의 외면과 냉소와 배척 가운데서 자라고 있다는 것, 이것이 에서의 성공에 이은 요셉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말하고자하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에서의 길에서 벗어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