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의 뜨락 (2001. 2)
지금 여기에 살아 복된 삶
김은옥
하늘이 내려온다. 군청색 산이 섬처럼 떠 있다
풀어져 내리는 하늘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지상인가
하늘과 땅의 경계선을
허무시고 이 땅에
화해자로 오신 이
산처럼 솟은
사람의 한들이 풀어져 내린다
언제이던가
우리가 한을 지닌 것이.....
비온 뒤 안개에 가려 장락산의 형상이 언뜻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장관을 바라보다가 이 글을 쓴다. 안개가 번지듯 내 안 가득히 피어오르는 주님을 그리며 새삼 눈물이 솟는다.
얼마만의 평안이던가. 얼마만의 쉼이던가. 예수의 정신을 삶 속에 구현시키고자 고단한 여정을 달려오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었다. 그 분처럼 살기 위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 뭔가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으로 달려왔던 시간들이 '나'를 잃게 했고 '그 분'을 잃게 했다.
내 안의 알맹이 없는 껍데기들이 씨그락 쌔그락 소리를 내다가 껍데기들 마저 바스라지고 난 무참히 무너졌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 삶의 한 자락을 접고만 싶었다.
마침내 끊임없이 솟구처 오르는 내 안의 물음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산골로 들어왔다.
전격적인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알게 된 예수마을공동체, 순수한
영혼의 동반자인 공동체지기인 최 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나 여기 이 곳에 짐을 내려놓았다.
세속에 물들은 일부 목회자들이 서로 우위임을 다투는 교회권에서 오염되지 않은 생각과
가슴을 가진 두 분을 만나 기적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1년 남짓 일정한 수입 없이
그 날 그 날을 살아온 시간들이어서 주님의 절대적인 보호하심을 느껴 더 행복했었다.
사람들이 이따금 묻는다. 밥은 굶지 않냐고? 그 때마다 난 이런 말을 한다. 주님이 필요한 부분까지 채워주신다고,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34절을 그대로 체험하며 살고 있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세상적으로 보면 아무 대책 없는 삶이다. 몸도 마음도 다 지쳐서 백기를 들고 온 이 곳. 더 이상 무엇을 하거나 무엇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전폭적으로 나를 주님께 맡길 수 있었다.
어느날 명상 중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여지껏 네가 다 알아서 했기에 내가 활동할 것이 없었다. 이제 네가 쉬기에 내가 활동할 시간이구나. "
아, 새삼 내가 얼마나 내 위주로 살아왔는지, 주님을 내 뒤편에 두거나 아예 멀리 보내 놓고 살았던 시간들. 그러기에 고단하고 지쳤겠지.
내 안에 원래부터 계셨고 변함없이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느끼니, 비로소 평안해진다. 주님의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짝사랑을 비로소 알아채고 충분히 그 분이 느끼도록 나를 맡긴다.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말이다.
우리 주님은 참 오래 참아오셨다. 말도 안되는 투정과 불평불만을 고스란히 받아주시고 안아주신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는 욕망을 버리니 참 마음이 편하다. 새해에도 우리 모두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길 기도해 본다.
* 김은옥 전도사(예수마을공동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