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의 뜨락 (2000. 10)
쉼터...... 뭘, 터?
배영미
유명한 전여옥씨 가라사대.. "21세기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보다 훨 유명한 예수님 가라사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무명한 나 가라사대 "무엇이 아이들을 자유케 할까? - 답:잘 모르겠는데요"
쉼터를 맡게 된지도 어언 1년이 되어 간다. 약 40여명의 아이들이 쉼터에 왔다 갔다. 내 가 보기에 그들은 모두 자유를 찾아 떠나온, 혹은 해방처를 향해 온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쉼터가 진정 그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었을까? 또 다른 해방처가 되었을까? 아직도 잘 모르 겠다.
작년에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쉼터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니?" 아이들의 희망사항 : "우선은요, 폭력이나 간섭이 없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가졌으면 좋겠구 요, 학교는 다녀야 하니까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담이나 학습지도를 해주시면 좋지 요. 또 먹고 살아야 하니까 직업이나 인성교육을 통해 앞날도 책임져 주면 더 좋구요. 이런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마디로 아이들은 자신을 그냥 그대로 두는 공간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먹을 것, 입을 것, 공부할 것이 풍부한 공간, 기술 습득이 가능한 장소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상이몽(同床異夢)을 몸으로 보여주는 선생인 나는, 요런 아이들만 쉼터에 왔으 면 좋겠다. 말 잘 듣고, 공부 잘하고, 반항을 하긴 하되 제임스 딘처럼 멋진 반항을 하는 아 이들... 그런 내 맘속에는 어느새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지니는 자가 가지는 고압적인 태도들 이 꼭꼭 숨어 있다. 그러면서도 다 이해하는 척, 아이들 편인 척, 교묘한 말로 아이들과 자 신을 합리화한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보게된 어떤 시는 이런 내 맘(혹은 다른 많은 선 생들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추어진 흉악한 폭력근성을 조 용히 그러나 무섭게, 고발하고 있었다. 어떤 시인고 하면..
작은 손
노혜경
손톱 밑에 때가 꼈다고 손바닥 맞고 돌아온 저녁에 물어보았지
엄마 엄마, 선생님의 그 권위는 어디서 온 거냐구
그건 권력이 아니라 사랑이란다. 얘야
어린 제가 잘 자라도록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는 아암, 사랑이고 말고
사랑은 내가 깨끗하길 바라고
사랑은 내가 조용하길 바랐어
사랑 때문에 난 줄을 잘 서고
사랑 때문에 난 인사도 잘 했어
이런 무서운 사랑,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감추어진 폭력에 나 역시 공범이었다. "공짜로 밥주고 공부시키는데 이 정도 말도 안 들으면 사람이 아냐!" 하는 으스대기. "우리 때는 이 런 것도 없었어. 이런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해야지.. 왜 반항만 하냐?"하는 비뚤어진 질투. 아, 이런 공간에 과연 '쉼'이 있을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여기서도 여전히 또 다른 해방처를 찾아 어디론가 떠난 다. 더 간섭이 없고, 더 탁 트인 곳으로 가볍게 가볍게 훌쩍, 예고도 없이 떠난다. 그들은 들 어올 때도 빈 몸이고 나갈 때도 달랑 옷만 입고 간다. 아주 가끔 쉼터에 있는 돈을 슬쩍 빌 려 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들을 보면서 나는 절망한다. 이 세상에, 가정에, 학교에, 어른에 철저히 절망한 그들의 행동을 통해 나도 절망이라는 불치병을 앓는다. '이 세상에 과연 온전한 사랑이 있을까? 이 렇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제도 교육과 비합리적인 이 땅에서 나 역시 질식하지 않을까? 아 나도 이 곳에서 탈출하고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지속되듯이, 그러한 갈등과 절망 속에서도 난 여전히 느긋 하다. 원래 낙천적이기도 하지만 변화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어 렴풋이 알기에 조금씩 조금씩 그냥 걷고 있다. 이 걸음 속에서 난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오늘 우리 청소년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가를 보다 지혜롭게 헤아리는 실용 적 삶의 기술(어디선가 주워 들은 말이다)"과 '말 잘 듣는 아이보다 당찬 질문을 하는 아이 를 어여삐 여기는 시선들'(전적으로 내 생각이다)이 아닐까?
또한 서로 간에 막힌 담을 트고 탁 트인 맘으로, 이중적 감정을 숨기고, 아닌척 보기 좋 은 말만 하는 숨막히는 형식을 넘어선 연대.. 그것이 진정한 쉼터의 필요 충분 조건 아닐 까??
난 오늘의 글에서 자유를 향한 질문에 하나의(the가 아닌 a) 결론을 얻는다.
"밑줄 긋고 받아 적을 찌니... 트인 맘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결론에 또 다른 해답들이 덧붙여지고 그것 그대로 살아나갈 때 이미 해방속에 들어와 있
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겠지? 이런 의미에서의 '불신지옥'을 다짐하며 난 오늘도 탁 트인 하
늘 만큼이나 트인 세상을 꿈꾸며 기도한다.
* 배영미 목사(예장 전국여교역자연합회 부설 청소녀쉼터 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