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성격유형론은 오늘의 한일국면을 풀어 가는데 있어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영성적 지혜를 제공해 줍니다. 한국-일본-독일의 국민성을 에니어그램 성격유형으로 분류하면, 흥미롭게도 9-3-6의 기본 삼각형 도형 안에 있습니다. 일본은 3번 유형, 성취가 Achiever입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성공, 효율, 목표, 조직, 지위, 보상 같은 현대의 경쟁사회에 부합하는 것들입니다. 경쟁에서 이기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이들은 기만과 상대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도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아베의 무역침탈을 진주만 습격에 비유하는 것도 이런 특성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의 혼네 本音도 이런 3번 유형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독일은 6번 유형 충성가 Loyalist입니다. 이들은 안전, 사명, 책임, 신뢰, 용기, 권력에 대한 양가적 시각을 갖습니다. 일반적으로 권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지만 동시에 일단 신뢰하면 긍정적 믿음으로 충성을 다합니다. 히틀러는 이런 독일국민의 마음을 얻어 권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줄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서 우리는 건강한 6번 유형을 발견합니다.

한국은 9번 유형 평화주의자 Peace- maker입니다. 조화, 조정, 중재, 연결, 포용, 안정, 평온과 편안을 추구하는 유형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전형적인 9번 유형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9번 유형은 자칫 문제를 일으키기 보다는 상대방의 욕구에 맞추려는 경향 때문에, 갈등 없는 거짓 평화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는 역사적 평가는 이런 9번 유형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편지에서 한일 간의 위기를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서부터 출발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 저는 평화주의자로서의 대한민국을 성찰하고자 합니다. ‘평화주의자’란 언뜻 이상적인 단어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문제나 갈등은 없는 것(실상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심리적 깊은 욕구 때문에, 가만히 있어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그냥 참아라,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착한 사람(실상은 바보),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은근과 끈기’는 불건강한 격정으로 작동되면, 문제를 일으켜 해결하기 보다는 내가 참고 문제를 덮으려는 심리적 나태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고 긍정적이며 능동적인 평화주의자가 오늘 우리들이 나아갈 길일 것입니다. 거짓 평화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강력한 힘에 의해 통제된 평화, 제국주의적 평화입니다. 트럼프나 아베가 추구하는 평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된 평화는 오히려 시끄럽고 소란스러워 보이지만,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드러나고 그것이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 샬롬의 평화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말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적 갈등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9번 유형인 우리에게는 매우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고, 나태하지 않고, 움직이는 역동적인 9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특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빨리 빨리’입니다. 이 단어는 산업화 이후에 한국인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지만, 이것도 나태함의 9번 유형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9번 유형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든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빨리 빨리’가 산업화 이후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루어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9번은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의 저자 짐 왈리스 Jim Wallis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온갖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내면의 두려움에 직면하는 영적인 투쟁을 넘어 진정한 승리에 이르기까지 치러야 했던 모든 수고와 노력들을 평화 임금(賃金/ Waging Peace)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날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평화보다 전쟁 임금 Waging War에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온 인류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도 안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러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Waging War가 아니라 Waging Peace를 실행해야 할 때입니다. 한일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은 전쟁이 아닌 평화의 길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수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경제적 관점으로 이익을 쫓을 것이 아니라, 건강한 평화주의자로서 인류사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움직이기 시작한 9번 유형 대한민국의 집단 지성이 어떻게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 낼지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