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현재화’는 신앙인들의 중요한 영적 숙제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붙들려 분노, 수치심, 두려움 등의 에고가 만드는 삶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 깨어 현존을 자각하는 것이 참되고 행복한 삶의 구원의 모습일 것입니다. 에고가 만드는 상상의 질병을 노이로제(신경증)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상상의 질병은 허상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삶을 대부분 갉아먹고 파괴하는 실제적 힘이며 결과가 됩니다. 있지도 않은 것 때문에 우리 삶의 에너지를 대부분 소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지요.

내가 바라보는 내 가족은 그들의 참 모습이 아니라 내 에고입니다. 내 에고가 만들어낸 욕망과 수많은 감정의 투사체이지 그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내가 만들어낸 허상으로부터 허상적 관계가 생겨나고 수많은 상상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지 실제가 아닙니다. 깨어있지 않으니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같은 공간 안에 살면서도 화성-금성처럼 다른 종족으로 느껴지고, 네가 옆에 있어도 네가 그립다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다시 태어나도 너를 선택할까? 하는 실없는 감정에 흔들리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깨어있으라!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여러분은 깨어있습니까? 자신이 깨어있다는 것을 어떻게 자각합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는 누구든지 자신이 잠에서 깨었다는 것을 압니다. 깨어남(깨달음)은 그와 같이 명확하다는 것이 영성가들의 가르침입니다. 내가 깨어났는지 모르는 것은 아직 잠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구르지에프의 제자 중 냉철한 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우스펜스키는 1916년 8월, 자신이 깨어나자 주변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기계라는 스승의 가르침이 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주위에 집중을 빼앗겨 자신이 다시 잠들게 되자 더 이상 잠자는 사람들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깨어 있음’과 ‘잠들어 있음’에 대한 가르침은 사실 조금만 주위를 기울여보면 우리 자신들의 삶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자식인지, 배우자인지, 아니면 어떤 일인지, 이루지 못한 내 꿈에 대한 회환인지, 아니면 육체적 질병인지, 경제적 고통인지,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적 문제를 그저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나를 붙들고 그것에 빠져 잠들게 만드는 문제구나!’ 자각하며 바라보는 것 (觀)입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 문제를 객관화한다는 것이요, 그것에 빠져 잠든 것이 아니라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깨어나면 거기에는 또 다른 현실,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최근 지병으로 인해 몹시 앓았습니다. 몸의 고통은 고사하고 이러다 죽는가 보다 할 만큼 밑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진액이 모두 빠져나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요가의 송장자세조차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낱 티끌만도 못한 내 육체의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거두어가시기를 바랄만큼 되자, 점점 명료해졌습니다. 내가 고통에 빠져 잠들어 있는가 아니면 고통에 의해 깨어있는가? 내가 이 점에 눈을 돌리자 고통은 지금 이 순간 나를 깨어있게 하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고통에 떨고 있는 나를 바라보자 그동안 내가 잠들어 있었던 수많은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들어 있던 그만큼 내 삶의 충만함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깨어나니, 지금 이 순간 고통은 있지만 고통은 내 생명과 생명의 충만함을 알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일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미래에서 찾으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에고의 헛된 욕망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이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을 발판삼아 깨어나십시오. 지금의 현실이 무엇이든 그것에 빠져 잠들지 마시고, 그것을 발판으로 깨어나십시오. 그러면 지금 이 순간 이미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은 에고가 만든 허상이니, 깨어나시고,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기쁨을 충만히 누리시기를 빕니다. 빠져있던 것에서부터 깨어나는 것이야말로 영성적 삶의 근간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