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15

 

 

 

 

 

 

 

 

 

 

 

 

  편지로 띄우는 말씀

 

양극화의 그림자

 

 

 

 

 

 

 

 

 

 





하 태 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요즘 양극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단순한 걱정이 아닙니다. 소득에 따른 빈부격차가 이제는 신분사회로까지 고착되고 있다는 걱정입니다. 주식을 물려받은 미성년자의 주가 총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는 통계만으로도 위화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밑바닥 인생을 벗어날 수 없다면 희망을 지닌다는 것 자체가 무망한 일이겠지요.

생존에 꼭 필요한 물질, 그것은 개개인의 존엄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하루하루 생존에 급급한 이들이 자존감을 지니고 살기는 어렵습니다. 개개인의 희망은 자존감을 먹고 자란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극심한 가난은 당사자에게는 고통이지만, 사회에는 큰 짐이 됩니다. 하지만 가난보다 더 고약한 것은 양극화로 인한 차별입니다. 일찍이 성경은 빈부양극화를 불의로 규정하고, 물질과 그 물질을 얻기 위한 노동은 반드시 성화되어야 하다는 물질관을 정립했습니다. 바울이 물질의 성화를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고후 9:6-15).

우리는 지금 난폭한 무한경쟁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시장경제는 자본 수익을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제도라는 것인데, 자본 수익이라는 게 사회성을 부여하는 ‘성화과정’이 없을 경우 언제든지 악마의 발톱이 될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물질의 성화는 신에게 드려짐으로써 이뤄지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물질의 성화는 노동의 신성함이 지지되고, 분배의 정의가 적실함으로써 이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시장경제 주체들은 물질의 성화를 전적으로 외면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수익에만 눈이 멀어 노동은 천시하고, 분배는 애써 외면합니다. 여기에 정부가 앞장서서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비극입니다. 비정규직 일용직 임시직을 양산하고,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기업과 자본 중심의 노동정책이야말로 노동 천시의 정신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기업이 아무리 잘 돼도 성화되지 않은 수익은 수익에 기여한 노동자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사회에 화를 불러들입니다.

빈부양극화의 미궁 가운데서 소득의 사회 환원이라는 대안으로 ‘나눔’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눔이 비록 사회적 관계망구축에 나름으로 유익할지라도, 노동의 가치와 분배정의가 결여된 나눔은 빈부양극화를 고착시킬 뿐입니다. 물질은 분배만이 선한 것이 아닙니다. 물질을 얻기 위해 투입하는 노동의 사회적 가치 역시 지지되고 존중되어야 합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노동자들에게 노조가입을 독려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지키며 자기 권리를 제대로 주장할 때 민주주의는 더욱 공고해지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가치가 배제된 나눔은 노동을 통해서 살아야 하는 이들을 소외시킵니다. 더 큰 문제는 노동 능력을 상실했거나 노동의 기회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선진사회는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자선/기부’라는 미덕을 발전시켰습니다. 하지만 자선/기부 또한 분화되는 사회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되자 ‘복지제도’라는 국가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복지제도를 마치 망국의 질병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정신구조가 궁금합니다.

예수께서 들려주신 어리석은 부자는 오로지 자기밖에 관심이 없습니다(눅 12:22 -34).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시장경제에 투철한 사람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내가’ ‘내 곳간을’ ‘내 영혼에게’ 이렇게 주격 소유격 모두 ‘나’밖에 모릅니다. ‘내가’ ‘나의’ 노예로 전락한 사람입니다. 그가 ‘내 영혼’이라고 말하는 영혼은 ‘목숨’을 뜻하는 ‘푸스케’로 ‘영혼’을 뜻하는 ‘푸뉴마’와 대조됩니다. 잠시 살다 죽을 생물학적인 자기 ‘목숨’만을 생각했지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영혼은 존재의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를 대변하는 인격임과 동시에 타자와 벗하여 사는 얼굴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을 향해 자기 목숨을 위해서 부유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서 부유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질이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 목숨만을 생각하는 영혼의 가난이 인간성 상실을 가져오고,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체를 황폐화시킵니다. 빈부양극화 극복 없는 미래는 암울합니다. 깊어가는 가을입니다. 양극화의 그늘이 더 깊어지기 전에 우리 사회는 물질의 성화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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