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석학이라 불리는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미래사회를 예측하며 기상 이변, 금융 거품 현상, 공산주의의 약화, 테러리즘의 위협, 노마디즘의 부상, 휴대폰과 인터넷을 비롯한 유목민적 상품의 만능 시대 등을 예고했습니다. 그중『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의 출현은 21세기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은 여행에 의해 태어나며, 오랜 여행에서 살아남은 종이고, 유랑생활에 가장 잘 적응한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처럼 종의 발전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환경과 만나고 적응하며 이루어집니다.

여행이 인류 진화의 근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착민의 눈으로 볼 때 일탈자, 범죄자, 소외된 사람들로 여겨졌던 양치기, 상인, 이주자, 떠돌이 광대, 용병, 혹은 도적떼나 거지들 등은 실상은 문명의 토대를 마련하고 전달하고 발전시켜온 사람들이 됩니다. 성서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조상을 ‘유랑하는 아람사람’과 ‘히브리인’으로 고백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리워하며 도시국가 사이를 떠돌며 싸우고 쫓겨나고 점차 정착해 가는 과정은, 그들의 고난의 삶과 더불어 유목과 정착의 변증법적 발전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유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화와 더불어 경제적 재편에 따라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유랑하기 시작했으며, 가히 새로운 유목시대의 도래라고 할 만한 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의 확대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현대 사회 유목의 특징은 사이버 공간을 떠도는, 유목의 변종이라 할 수 있는 도시의 유목 urban nomadism입니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하나가 된 가상공간을 유랑하는 신 新유목민들은 현실에 불만을 품고 가상공간을 떠돌며 자기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가상공간을 떠돌면 떠돌수록 현실에서는 고독해지며 외로워집니다. 가상현실에서의 나와 실제현실에서의 나는 많은 차이를 보이며, 그 둘 사이에서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이 꿈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가상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합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도시의 유목과 결합된 유목민적 상품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트랜스휴먼, 포스트휴먼이라는 신인류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포스트휴먼은 인류의 오랜 꿈이기도 한 영생의 문을 넘어선 인간이며, 트랜스휴먼은 그 과정에 있는 인간과 기계 혹은 인간과 유전자 기술로 배양한 생체조직을 결합한 인간을 말합니다. 도시의 유목민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듯, 트랜스휴먼이나 포스트휴먼의 도래는 생명창조에 대한 윤리문제, 또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새로운 정체성의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유목’은 생명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삶의 과정은 DNA에 각인되어 있는 변화에의 본성입니다.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하고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의 변화라고, 우리는 이해합니다. 이런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이런 유목의 삶을 초월하는 궁극적인 하느님 나라에 도달하기를 희망합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루어지는 영생에의 과정은 이런 ‘초월’을 놓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 과학은 눈에 보이고 만지고 조작할 수 있는 물질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주과학은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의 존재를 증명하며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은 우주 구성물질의 5%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대두되는 신유목시대는 우리 인류로 하여금 ‘초월’이라는 영적 진화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인류 역사가 눈에 보이는 물질문명의 바탕에서 세워져왔다면, 이제는 물질문명의 한계를 내다보며 영적문명에 눈을 떠야할 때가 왔습니다. 인류, 아니 ‘생명망Network of Life’은 그 천국의 문을 넘어서려고 오랜 세월을 떠돌아다니며 살았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새번역/누가17:20-21). 가상에서든 현실에서든 그 나라를 찾아 떠돌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가상현실에도 실제 현실에도 없는, 그러면서도 우리 가운데 있는, 자못 비밀스러운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추석에도 이제는 더 이상 찾아갈 고향이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삶에서 삶을 초월함으로써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고향, 아니 영원한 고향의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