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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띄우는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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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사람들입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자나 차상위계층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도 없습니다. 돈이 이미 최고의 권력이 된 이 땅에서, 그분들에게 대한민 국은 저 먼 미지의 나라보다 혹독한 겨울공화국입니다. 최근 드라마 <미생>에서 어느 실직자가 한 말이 깊이 여운을 남깁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라. 직장이 전쟁터라면 직장 밖은 지옥이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지옥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날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리고 더 암울한 미래를 예측하는 2015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은 아브람에게 세상 끝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저곳으로 가라.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 하느님이 가리킨 곳은 아브람에게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두려움의, 일가친척과 고향 땅 삶의 기반을 버리는, 죽음의 땅일지도 모르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그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떠났습니다. 아브람을 떠나게 한 그 힘은, 그 믿음과 용기는 어디에서부터 왔을까요? 저는 그것을 ‘절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브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일어나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세상의 끝에, 절망의 절정에 서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죽어도 좋을 만큼, 아니 차라리 죽음과 바꾸고 싶을 만큼 처절한 현실이 있기에, 그는 일어난 것이 아닐까요? (아브람 여행에 대한 사회학적 성서연구는 이런 정황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하루 종일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저쪽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라.” 베드로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움직이게 한 것은, 예수에게 끌리는 알 수 없는 힘이나 거부할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절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독한 가난, 굶주려야 할 가족들에 대한 안타까움, 배고픔과 무력감, 이런 삶의 끝자락에 선 절망이, 말씀에 의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통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배부르고 등 따스운데서 나오는 지식이나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이렇게 세상의 끝에 서서 절망을 딛고 일어나 후들후들 다리를 떨며 움직이는 행동일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은 분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분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세상의 끝을 보고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절망을 마주하십시오. 일어나십시오. 움직이십시오. 걸으십시오. 떠나십시오. 절망이 우리를 등 떠밀지 않습니까? 절망이 바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아닙니까? 지금이야말로 다시 용기를 내어 희망을 말할 때입니다.” 세월호 가족을 초대하여 산돌학교 가족들이 함께 만났습니다. 서로 마주보고 대화하며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고통 속에 울고 있을 때, 산돌학교 친구들이 함께 울며 걸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가족들은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울고 있을 때, 우리가 절망하고 있을 때, 우리가 세상의 끝에 서 있을 때, 누군가 우리와 함께 울고, 함께 절망하고, 함께 세상 끝까지 걷고 있습니다. 그 누군가를 우리가 만날 수 있기에, 희망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아니 희망은 절망의 다른 얼굴이며,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죽음을 가진 인간이 영생을 가진 신들조차 부러워하는 삶을 가지듯, 절망을 가진 인간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세상의 끝에 서있는 그대들에게 여기 작은 손, 나를 붙들어 주신 하느님의 작은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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