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를 63번째 맞이하는 시점에서 한반도의 긴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60돌을 맞은 정전협정은 북핵 위기와 함께 일방적으로 파기가 선언되었습니다. 대화를 통하여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어야 마땅한 일인데, 우리의 염원을 담은 통일의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는 정반대의 길로 내닫고 있습니다. 위기가 고조되기 쉬운 상황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눈을 높이 들어 둘러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겨레가 바라고 이루어야 할 높은 뜻을 의식하는 일입니다. 민족화합, 남북통일, 그리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일입니다. 이를 통하여 온전한 일치를 향하여 나갈 것을 재확인해야 합니다. 남북의 지도자들이나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끌어안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일치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념과 체제와 사상이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가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오는지, 또 그것 때문에 하나 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화와 협력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어려워도 넘어야 할 산이요, 건너야 할 강입니다. 뚫을 수도 무너뜨릴 수도 없는 벽이라면 넘어서라도 가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이루는 교회 안에서조차 일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리고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사람들이 평화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 모두 압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기를 원하고, 그리스도와 일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조차도 다른 사람들과 하나 되기를 그만큼 원하지 않는 것이 그 원인입니다. 왜냐하면 그보다는 각자 자기 이익을 도모하고 자기만 앞세우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화합과 통일을 말하면서도 권력 안정과 정권 안보에 집착하면 높은 뜻은 뒤로 밀리거나 망각되고, 당장의 목표와 체면에 모든 것을 걸게 되니까 위기만 고조되는 결과에 이릅니다. 리처드 세넷 Richard Sennett의 저서 ‘투게더 Together’가 말하듯이 ‘협력의 의례와 즐거움과 정치’를 살리면 서로 각자의 목적도 이루고 더불어 큰 뜻을 이룰 수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17세기 독일 신학자 루퍼투스 멜데니우스 Rupertus Meldenius가 남긴 평화어록의 명언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첫째,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In necessariis unitas: 둘째,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In non necessariis libertas: 셋째, 모든 것에는 사랑을. In utrisque caritas.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평화를 이루지 못하는데 대한 준엄한 통찰입니다.

정권을 담당하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도 잠깐뿐입니다. 각기 국가의 장래와 민족의 역사를 생각하면, 자나깨나 민족화합과 남북통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일입니다. 정치지도자에게 뿐만 아니라 남누리 북누리 한겨레 모두에게도 똑같습니다. 이 본질적 과제 앞에서는 일치를 이루어야 그 다음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다른 사회체제와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인 만큼, 눈높이 CE-Level가 다른 것을 서로 인정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대화와 협력을 통하여 서로 양보하고 희생을 감수하면서 자유를 알맞게 허용할 일입니다. ‘희생은 인격의 시금석’이란 말이 있듯이 먼저 희생하며 손을 내미는 쪽이 장자가 되는 법입니다.

비발디의 모테트를 엠마 커크비의 아름다운 노래로 들으면서 ‘고난 없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고 하는 가사를 가슴 저미도록 깊이 느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 없이는 일치도 평화도 없습니다. 이 진실 앞에서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남누리 북누리가 하나 되어 민족화합과 통일을 이루는 본질적인 것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거기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와 방법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만큼 자유를 허용하면서 융통성과 관용으로 협력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