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리더십을 말할 때 흔히 쓰이는 수사 rhetoric가 ‘청사에 길이 빛나는 리더’라 하는 것입니다. 인성과 리더십 연구에 내공이 큰 제임스 힐먼은 그의 저서 ‘권력의 종류’ Kinds of Power에서 리더십이 역사의 도구가 된다고 말합니다. 머지않아 대선 후보를 뽑을 우리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있어 소개하고 싶습니다.

대선 후보들의 공방전이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무대에 오른 그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갖습니다. 다름 아니라 대선 후보들 가운데서 정치경험이 많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사람이, 적어도 현재로선, 지지율이 낮은데 비하여, 그들이 국정 경험이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정치경험이 더 없다고 말을 듣는 사람일수록 지지율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수수께끼입니다. 그런데 힐먼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말하듯 합니다. ‘지도자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 난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테스트 받지 않은 채 전면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들은 훈장도 없고, 벽에 걸린 상장도 없을 수 있다. 블루 리본 같은 것을 한 번도 받아본 일이 없다. … 이를테면 예민한 헨리 폰다나 과묵하고 수줍어하는 게리 쿠퍼 같은 배우들이 맡은 배역에서 드러나는 겸손하고 어줍어하고, 불확실하고, 진중하고, 심지어 겁먹은 표정까지 짓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상황이 요청할 때는 전면에 나선다.’

이런 인물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힐먼의 표현대로 ‘숨은 리더’인지 모릅니다. ‘숨은 리더란 조직이나 회의석상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은 내리게 만들고, 프로그램을 집행하지는 않는다. 숨은 리더는 책임을 맡고 있지는 않으나 그의 권위가 토론을 분명한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만든다.’

이런 통찰은 대선 정국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국면에서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파워와 리더십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 조직에서도 필요하겠으나, 리더십에 대하여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대선 후보를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참고할 기준이 될 것입니다.

정치는 흔히 ‘타이밍의 예술’이라 합니다. ‘결정적 순간’으로서 카이로스 kairos와 ‘절호의 기회’ occasione에 대한 ‘동물적 감각’ animal sense을 포함한 감지력과 살리는 능력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절호의 기회는 지도자가 운명과 숙명의 복합적 원인을 관리할 때 생기는 유일무이한 길조의 propitious 순간이다.’

바로 이런 ‘절호의 기회’를 인식할 수 있는 역량 capacity이야말로 리더십을 행사하는데 있어서나 리더에게 상황을 통제할 파워를 주는 일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다’라는 말은 정말 의미심장합니다. 그동안 전면에 나타나지는 않았어도 이런 재능과 역량은 평소에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행동에 대한 성찰이 가장 숭고한 행동’이란 확신을 가지고 살면서 쌓은 내공이 위기에 순간에 ‘미리 생각하지 않았다가도 행동’할 수 있는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이런 것이 리더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경험의 축적이 드러내주는 면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리더십의 파워가 주어지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비전(이상)을 구현하는 능력과 이상(비전)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지 않는 자세이다. 강한 성격의 성향이 주어진 사람은 많으나 이상을 대표하고 표현하는 힘이 주어진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은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듯합니다. 우리는 여러 차례 대선을 치렀지만 1987년의 체제를 넘어서 2013년 체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할 역사의 전환점에 있습니다. 미래지향적 역사의식도 절실하고, 온 국민이 이뤄내야 할 이상과 비전은 더욱 절박합니다.

‘이상은 전 국민을, 전 세계를 동원할 막강한 파워인데, 한 인물 속에 이 파워가 살아 있을 때, 리더십은 역사의 도구가 된다’는 말이 가슴을 칩니다. 우리 모두가 깨어있는 의식으로, 역사의 파수꾼의 눈으로 ‘역사의 도구가 될 리더십’을 기필코 찾아서 세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