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 독립 만세 사건의 92주년을 맞이하며 3?1운동을 되새깁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자면, 8?15광복절보다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평소에 했던 생각이 금년에는 유달리 강렬하게 더 큰 뜻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오늘의 엑소더스를 절실히 생각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처음교회가 기미년에 보여준 동포애와 나라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되살아나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1884년에 이 땅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여 교회가 세워진지 불과 3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아 신도수가 전체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20만 명에 불과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개신교 대표가 16인이나 되었습니다. 기왕에 자리잡고 있던 전통종교의 대표들과 함께, 실로 짧은 역사의 외래 종교가 독립만세 운동에 분명한 자리매김을 한 것입니다.

나라를 잃고 억압과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지옥 같은 상태에서 고난을 겪던 때였습니다. 개신교 복음을 받아들인 선각자들은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릴 길을 기독교 복음에서 찾았고, 고난의 역사 속에서 국민이 가져야 할 새로운 정신과 사상을 기독교에서 찾았습니다. 성서의 모세와 바울과 같은 지도자들이 지녔던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을 공유하였고, 그 사랑은 곧 하나였습니다.

당시 보수적 입장에서 신중론을 편 지도자들을 향하여 ‘나라 없는 놈이 어떻게 천당에 가? 자식과 형제와 자매와 이웃과 동포들이 전부 지금 지옥에 있는데, 혼자 천당에 갈 생각을 해!’ 하고 일갈함으로써, 남강 이승훈 선생은 바로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이 하나임을 믿었던 선각자들의 뜻을 대변하였습니다.

이런 정신이 역사의 한 가운데서 민족 수난사에 온 몸을 던져 개입하면서 3?1운동을 선도하게 만들었고, 역사가 짧은 개신교가 한민족과 고난 속에서 한 마음 한 몸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민족 특유의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비폭력 평화시위로서 3?1운동을 이끌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민족자결주의와 함께 3?1운동이 전 세계의 약소민족에게 봉화의 불길이 되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이처럼 민족수난사와 함께 한 교회였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고, 아픈 사람들을 고치는 병원을 세우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일제 말기에 혹독한 세월 속에 박해까지 이겨낸 교회가 해방 이후 전쟁을 겪으며 복구와 재건의 어려움까지 이겨냈습니다. 자랑스런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이루고 선진국 문턱에 이른 오늘, 그 어느 때보다 교회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지탄의 대상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부끄러운 이야기는 더 늘어놓기가 면구스럽습니다. 개신교의 신도수가 날로 줄어드는 것이 걱정이 아닙니다. 교회가 이 사회, 국가, 민족 앞에 무슨 빛을 드러내며, 무슨 발언을 하고, 무슨 이미지를 남길 수 있을까가 문제입니다.

크고 작고를 떠나서 모든 개교회는 전체 한국교회의 지체일 뿐입니다. 더 이상 국가도 민족도 외면한 양 이기적 목표에 함몰되지 말고,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으로 타락하고 혼미한 사회에 새로운 정신과 사상을 불어넣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일에 개교회부터 온 교회가 뜻을 모아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먹을 양식이 없고 마실 물이 없어서 기근이 아닙니다. 이집트의 바로가 압제해서 갇힘이 아니라, 지금은 ‘이기주의와 물신주의와 무한경쟁’이 빚어낸 탐욕의 문화 속에 갇힘이 문제입니다. 교회는 오늘의 엑소더스를 감행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맘모니즘과 바알 숭배 같은 우상숭배를 혁파하고 탐욕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새로운 엑소더스를 위하여 교회가 공동체적 연대를 강화하며 온 국민이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평화 사랑’의 바탕 위에 세우는 복지국가로서 선진국을 향하여 엑소더스를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