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본디 힘이 있습니다. 속에 품은 뜻이나 느끼는 감정이 밖으로 표현되는 온전한 말인 ‘고백’은, 그 말이 행동이나 삶으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이 ‘고백’은 ‘같은 말’ homologia로서 말 자체가 진실이요 리얼리티가 됩니다.

여기서 ‘같은 말’은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말과 상통합니다. 이 말은 맑은 힘과 긍정적인 힘을 지니고 있어서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입니다. 이런 말은 힘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모으는 힘도 됩니다. 이와 반대로 속과 겉이 다른 말은 거짓이요 위선입니다. 이 또한 힘이 있으나, 그 힘은 관계를 깨뜨리며 저항을 불러일으킵니다.

만화가는 만화를 통하여 진실을 드러내고 리얼리티를 살립니다. 작가나 배우는 연극을 통하여 리얼리티를 드러냅니다. 거기에는 감동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작가나 배우가 드러내는 진실을 독자나 관객이 공감하며 공유할 때 힘이 솟아납니다. 이렇듯이 일상에서 누군가가 하는 말에 듣는 이가 공감을 하게 되면 그 말은 힘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이유는 말하는 이나 듣는 이가 소통이 되어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로써 진실을 드러내면 ‘커뮤니케이션’이라 하는 ‘소통’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커뮤니카레’ communicare 즉 ‘하나 되게 하다’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온전한 말은 모두가 ‘하나’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교훈과 지혜를 얻고 힘을 얻습니다. 그런 말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힘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경험하는 말들은 사뭇 다릅니다. 특히 정치인들은 말로써 감동을 주는 것과 정반대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난히도 무덥고 긴 여름을 지내는 국민을 더욱 힘들고 지치게 하고 기운 빠지게 했습니다. 사실과 다른 말뿐 아니라 진실을 뒤집는 거짓말을 버젓이 하였습니다. 배우가 연극을 하면 감동을 주지만, 정치인이 연극을 하면 그것은 거짓이요 위선이 됩니다.

만화가는 만화로써 감동을 주지만, 정치인이 현실 속에서 ‘만화’를 만들면 정치를 ‘희화화’함으로써 냉소주의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이 냉소주의는 정치 혐오증이나 무관심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정치에 대한 불신을 낳게 합니다. 무더위 속에서 치른 고위 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온 국민이 감동은커녕 실망과 분노를 느꼈던 까닭을 되짚어 봅니다.

총리 후보자가 지명을 받고 처음 기자 회견에서 한 말이 그러한 상황을 드러낸 발언으로 꼽을 만합니다. ‘나는 소통과 통합의 아이콘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의 말은 아이콘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아니요, 희망도 아니요, 결단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은 ‘욕심’이라 하였습니다. ‘평소에 먹은 맘이 취중에 나온다’고 하듯이, 불쑥 나온 말이라 하더라도, 그 말에 담긴 그의 속내를 알기에 충분한 말이었습니다.

‘소통과 통합’은 사회의 중대한 과제입니다. 현 정권이 2년 반 동안 도무지 이뤄내지 못한 명제입니다. 대통령이 ‘선언’은 하면서도 실제는 그와 거리가 먼 상태입니다. 총리가 되려는 사람이 조심스레 ‘국민의 지지와 협조를 얻어서 이루어나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어도 충분치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겸손’ humilitas을 잊은 채 ‘성공에서 비롯되는 오만’ hubris born of success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부터 현실에서도 똑같이 ‘주인공들’이 드러내는 오만은 격한 감정으로 남을 경시하거나 무시하기를 잘하고 ‘무치’ 無恥를 곧잘 드러냅니다. 죄 없는 성인의 무치는 감동이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의 무치는 ‘오만’의 극치를 이룹니다.

이런 무치 즉 ‘후안무치’는 소통과 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깨부수기까지 합니다. 오만에서 나오는 말은 분열과 반목, 대결과 갈등을 일으킬 뿐입니다. ‘흙과 사람과 유모어’의 어원인 humilitas 즉 겸손에서 나오는 말은 소통과 통합,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힘을 지닙니다. 진정한 말의 힘은 겸손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