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놀랐습니다. 세계도 놀라고 우리도 스스로 놀랐습니다. 사람의 감정 가운데 놀라움보다 더 복잡한 것이 있을까 할 정도로 그것을 표현하는 말 또한 각양각색이어서 나라마다 아주 다양한 말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사안,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각기 선 자리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리 이해되듯이, 놀라움 또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놀라움이 크면 큰 만큼 그 중심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 그 어떤 힘이 있는 듯합니다. 이번에 우리는 그 어떤 힘을 경험하면서 그 힘이 우리 모두를 얼마나 놀라게 하였는지를 보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보고 놀라면서도 그 속에 있는 힘의 바탕이 무엇인지를 자각하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이 힘의 위력에 대해 자못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민초들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압니다. 실상 모르는 이들은 힘 있는 이들이요 상층부를 차지한 이들입니다. ‘산 대통령이 움직이지 못하는 국민의 마음을 죽은 대통령이 움직였습니다.’ 이 같은 일을 어찌 상상할 수 있으며, 더욱이 알기나 하겠습니까? 사람들의 평범한 삶 속에 자리를 함께 해보지 못한 지도자들, 심지어 그들과 더불어 일상의 감정을 함께 느껴보지 못한 지도자들이 어찌 알기나 할 일이겠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서거’란 말을 쓰니 마니 하는 것에서부터 ‘국민장’이 타당하니 안 하니 말한 사람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애도기간 동안 눈물 한 방울 흘려보지 못한 이들이 알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7일장으로 국민장을 치르는 애도기간 중에 남녀노소 국민 다수가 보인 조문과 애도의 정은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전국 301곳의 분향소에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문하였습니다. 국민장의 위원장을 비롯한 정당 지도자들이 고인의 친자가 아니면서도 상주 노릇을 한 것은 의전상 관례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일반 시민들 가운데서도 분향소를 차리고 상주 노릇을 한 경우는 감동을 넘어서는 사건입니다. 서울 광장에서 국민장을 거행하며 노제를 올릴 때는 물론, 서울역 광장에 이르기까지의 연도에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구름처럼 모여든 역사적 사건, 민주화, 탈권위주의, 약자보호와 정경유착 근절 등에 대한 그의 의지와 결단을 어찌 이해하겠습니까?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한 체 놀라기나 할 뿐이겠지요.

그러나 이제 뒷생각으로라도 파악하고, 정리하고, 알고 싶은 사람들이 그 ‘모두를 놀라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듯합니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무슨 힘이 국민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였다고 봅니까?’ 이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동정심이었습니다. 국민의 동정심이 크게 움직였습니다.’

거기다 덧붙였습니다. ‘뜨거운 동정심이었습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듯하였습니다. 뒷궁리도 좋고, 뒷생각이라도 좋고 추상 afterthought이라도 좋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 땅의 모든 지도자들이 이번에 국민이 보여준 그 ‘모두를 놀라게 하는 힘’을 바로 보고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치게 막강한, 그래서 제 힘을 쓰지 못하는, 제왕적 권한을 쥔 대통령이 움직이지 못하는 힘을 국민이 발휘하도록 만드는 비결을 배울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녔던 가치관과 정신을 공감한 사람들이 애석해한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방법론이나 집행 과정의 오류와 실수는 있었다 하더라도, 감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결행할 수 없었던 것을 온몸을 던져 이루려고 하였던 그의 의지와 결단만을 생각하여도 저절로 존중하는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애도의 물결 속에 나타난 힘과 열기를 의식하며 공감대를 이룬 듯하였습니다. ‘노사모’를 중심으로 하여 끝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며 동일한 입장을 지녔던 사람들로부터 그를 비판하며 반대 입장에 섰던 사람들까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정치 지도자가 그처럼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국민을 사랑하며 정치할 수 있을까?’

온 국민이 이처럼 애도한 것은 이 뜻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도 바로 이 뜻 때문입니다. 온 국민이 흘린 애도의 눈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동시에 자신들과 온 국민,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국민들을 위한 뜨거운 동정심의 눈물입니다. 우리 한겨레는 어떤 계기에서든지 뜨거운 동정심을 함께 느끼면 세계를 놀라게 하는 힘을 드러내는 민족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는 국민들의 가슴에 이런 뜨거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닌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