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이 어느덧 십년의 세월을 견뎠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돋아난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으나, 이제까지 살아남은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처럼 소박한 뜻을 지니고 공동체 문화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끈질긴 관심과 노력의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

예부터 영성가들은 공동체의 본질에 관한 문제에 민감한 관심을 지니고 살았음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햇순]을 가꾸어 온 이들이 사람에 대하여 그리고 공동체에 대하여 순수한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 또한 영성의 전승과 맥을 잇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작고 소박하지만 [햇순]이 더욱 대견합니다.

[햇순]을 만드는 이들과 읽고 지원하며 사랑하는 이들 모두가 다시금 이 시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참여와 소유에 관한 문제의식입니다. 예부터 참여는 덕스러운 것이라 여긴데 비하여 소유는 악에 가까운 것이라 여겼던 뿌리가 있습니다. 현대에 있어서는 소유를 굳이 악이라 여기지는 않더라도, 영성의 빛에서 보면 분명히 경계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소유에 상관없이 모두가 참여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좋은 뜻에 동조하다가도 소유와 무관하다고 생각할 때 참여가 힘겨워지거나 멀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압니다. 참여하며 개입할 때 소유하지 않으면 참여의 순수를 지킬 가능성은 있으나 지속하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소유하면 지속은 가능하나 집착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지배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기 십상입니다.

공동체에 관심을 둔 영성가들이 참여와 소유 사이에서 고민하며 분별한 흔적을 우리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4세기의 영성가 니싸의 그레고리 Gregory of Nyssa와 17세기의 수학자 파스칼 Pascal 그리고 현대의 영성가 로어 Rohr 같은 이들의 통찰에서 지혜를 얻습니다. 그야말로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소유하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은 소유한 듯이, 소유한 사람은 소유하지 않은 듯이 참여만 하는 자세로 개입할 때 공동체는 살아납니다.

소유에 상관없이 초연한 자세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초연하게 참여하는 것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소유에 집착 attachment하면 결국은 남을 지배하는 구조를 강화하게 됩니다. 초연함 detach- ment이란 남을 지배하려는 시도와 권리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물러서서 공평한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은 정욕에 이끌려 남을 지배하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히거나 자신의 권력과 이익과 쾌락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조작적인 지식을 키우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초연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참여하기 위해서는 물질의 습득이나 축적으로부터 초연하고, 독선과 지나친 자기주장으로부터 초연하고, 결국은 남을 지배하려는 집착으로부터 물러서서 초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동일한 입장에서 참여하는 것이 공동체의 순수를 지키고 살리는 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말로 끝내주려는 욕망’을 극복하고 필수적으로 남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치유의 능력을 키우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따라서 서로를 지원하는 공동체 supportive community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햇순]이 어느 누구의 소유가 아님을 새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함께 만들고 읽고 지원하는 이들이 소유에 상관없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더욱 고마운 일입니다. 처음부터 척박한 공동체의 토양에 돋아난 [햇순]이 얼마나 견디고 버틸까 염려하던 많은 분들이 바로 이 시점에서 소유하지 않고도 소유한 듯이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모두의 것이 된 [햇순]을 사랑하고 지키고 보살핌에 참여하는 일이 바로 공동체 문화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일임을 재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소박한 바람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런 햇순이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정부에서 하나씩 하나씩 돋아나 조용한 참여의 물결이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