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No just war)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전은 없다’(No holy war)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인류의 전쟁을 통틀어 정의와 거룩함을 내세운 전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평화를 내세우지 않은 전쟁이 없었다고 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역사적 진실입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늘 ‘성전’을 외칩니다. 최근에 미국이 거의 일방적으로 이라크에 공격을 퍼부은 언필칭 ‘이라크 전쟁’도 예외가 아닙니다.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반전 데모와 기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국민의 해방과 인권을 내세우며 폭탄 세례를 퍼붓는 무서운 전쟁을 감행하였습니다. 누가 봐도 정의로운 전쟁도 아니고 성전은 더 아니었습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언론에서 흔히 원리주의자라고 부르는데 기독교 신자인 그를 기독교 신학의 전문 용어로 부르자면 ‘근본주의자’ 라고 할 것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신이 믿는 바를 편협하게 맹신하거나 광신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그것은 신의 뜻 곧 신의 계시와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 믿습니다. 신이 나의 편이라고 믿으면 신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믿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 믿게 됩니다. 토마스 무어는 일찍이 ‘영혼의 상실’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것이 드러내는 증상을 ‘강박증과 중독증과 폭력과 의미의 상실’이라 하였습니다. 그가 근본주의에 대하여 흥미로운 정의를 내립니다. “영혼을 상실할 때 영성/신앙은 근본주의라는 그림자 형태를 취한다.… 나는 근본주의 -펀더멘탈리즘-을 삶의 오버톤 즉, 상상력의 풍부함과 다신론에 대한 방어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다.… 근본주의에는 융이안-프로이디안, 민주당-공화당, 락-블루스 등 온갖 종류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방식과 상관이 있다. 예를 들면, 이 심리학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일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떤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우리는 발달 심리학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형성된 것에 대하여 뭐든지 부모 탓을 한다. 그러나 만약 그런 어릴 적 이야기들을 통하여 볼 수 있고, 그 속에 있는 시를 포착하고,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영원한 미스터리를 들을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나 남을 지배하는 사람이나 억압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와 같은 근본주의적 성향이 강할뿐더러 누구에게나 지는 것과 꿀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을 지닙니다. 힘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거나 양면 가치를 동시에 붙들고 사는 양가적 태도가 강합니다. 따라서 정의와 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전쟁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에서는 그 어디서도 성전을 엿볼 수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적을 설정하고 그 적을 대항하여 싸우는 전쟁은 이름과 명분을 어찌 세우든 간에 그것은 추악한 전쟁일 따름입니다. 더욱이 이번의 ‘이라크 전쟁’은 온 동네가 반대하고 말리는데도 힘센 어른이 약한 어린이를, 그것도 주먹이 아니라 몽둥이로 패는 것과 같은 추한 전쟁이라고 하는 이가 많이 있습니다. 기실, 성전은 있습니다. 남을 상대로 물리적인 힘의 대결로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근본주의자가 ‘영원한 미스터리’를 찾으며 자신을 포로로 만들고 있는 근본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Holy War 라고 하든가 이슬람에서 Jihad 라고 하는 성전은 본디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이루고자 갈망하는 속사람과 불의와 증오와 전쟁을 일삼는 겉사람 사이의 끈질기고도 중단 없는 싸움을 두고 부르는 것입니다. 니코스 카잔자키스가 말한 것처럼 ‘잔인하리 만큼 끈질긴’ 내면의 성전을 두고 일컫는 말이 바로 성전입니다. 이런 뜻에서 ‘성전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평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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