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 2021

 

 

 

 

 

 

 

 

 

 

 

 

  성서연대 - 수필

 

추모 - 고 김옥라 회장님을 추모하며

 

 

 

 

 

 

 

 

 

 


민 영 진


목사
대한성서공회번역자문위원
세계성서공회연합회 번역자문위원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yjmin@bskorea.or.kr






 



학창시절. 간성 干城공립보통학교 졸업,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으로부터 “우리나라 호스피스 자원봉사의 큰 별, 김옥라 박사가 2021년 8월30일(월) 오후12시 05분에 104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부음을 들었다. 그의 104년 생애에서 마지막 27년을, 나는 각당복지재단이 주최하는 죽음준비교육 지도자과정 강사로, 또 그 재단이 공개적으로 개설한 성경공부 인도자로 김옥라 회장님과 오랜 세월을 같이 보냈다. 그의 삶을 잠시 회고해 본다.

원산 元山 보혜 普惠성경학교 수학, 독학으로 전검 專檢 [지금의 대입검정고시] 합격, 서울감리교신학교 입학, 3년 후 폐교, 개교 후 중퇴(1937~1940), 먼 훗날 명예졸업(2002), 일본유학, 마에바시 前橋 시에 있는 공애 共愛여자고등학교 졸업, 동지사 同志社대학 여자전문학교 영문과 졸업(1941~1945), 연세대학교연합신학대학원(1969~1971) 신학 석사. 동지사여자대학 명예문화박사(1999 .11.19),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실천신학박사(2007.8.27.).

사회생활. 1945년 10월 귀국, 미국군정청취직, 과도정부 때 총무장관실 비서, 정부수립 후 외자청 外資廳 사무관, 1947년 혼인, 신랑 라익진, 1950년 한국전쟁, 서울에서 3개월 동안 숨어있음.

여성운동. 한국교회여성연합회(1966년 봄), 부산 피난 시절 걸스카우트 중앙연합회 간사장에 임명(1952.11), 이사 취임(1967. 2). 범태평양 동남아시아 여성대회(1968.). 감리교여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1974.4), 한남동여선교회회관 건립, 제6차 세계감리교여성대회에서 5년 임기의 회장에 당선(1981.7~1986.7)되어 63세에서 68세 되던 해까지 5년 동안 전 세계 감리교 여선교회를 섬겼다.

자원봉사운동.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 설립(1986.7), 호스피스 연구회 설립(1987년 9월).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설립(1991.4.2.).

그는 내게 억지로 죽음학 thanatology을 공부시킨 선생님이다. 1994년 4월 어느 날, 벌써 27년 전이다,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가 1년 후 1995년 4월에 죽음학 공개강좌를 여는데, 거기에서 “성경에서 보는 죽음”을 발표하라는 것이다. 많이 난처했다. 성서신학과 죽음학과의 대화에 관해서는 나 자신이 전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단 어른의 모처럼의 부탁을 그 즉석에서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다행히 1년 후라고 해서, 마지못해서 해보겠다고 했다. 1년이나 남았으니 도중에 어떤 구실을 대서라도 이 짐을 벗을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내 허술한 생각에 비해 김옥라 회장님은 집요했다. 한 달 후, 강연 준비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죽음학 쪽에 너무 무식하여 이 과제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더니, 1991년 10월에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가 일본에서 머물고 있던 알폰스 데켄 Alfons Deeken 박사를 서울에 초청하여 행한 여섯 차례 죽음학 강연과 두 차례 죽음 관련 대화 모임 자료, 그리고 엘리자벳 퀴블러 로쓰Elizabeth Kubler Ross의 죽음학 관련 저서 두 권을 내밀면서 “이거 다 읽고 공부하면, 죽음학 개론은 띤 것이 될 테고, 성서신학과의 접목은 민 박사 특기니까 무난할 거고, 아직 1년이나 남았는데, 천천히 공부해요!” 이렇게 코가 꿰이어 30여 년을 김옥라 회장님과 함께 죽음학과 성서학 접목 작업을 계속해왔다. 가신지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도, 벌써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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