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센터 문을 열면서 바로 아이들에게 묻는다. 저녁 맛있게 먹었는지, 오늘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아이들도 내가 들어가면 내 손에 든 책을 훑어본다. 아이들이 책이라도 읽고 있으면 기특해서 머리라도 쓰다듬게 되고 내가 들고 간 책을 재미있으니 읽어 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읽기 요구를 은근히 강압적으로 하는 편이다. 책 10권을 읽으면 자장면을 먹기로 하거나 야식으로 라면 끓여 먹기 등등의 주로 먹는 것에 관한 약속을 한다. 책을 잘 읽은 아이 덕에 맛있는 자장면을 먹는 거라며 책 읽은 아이의 기를 더욱 살려 준다. 아이들 특히 부모의 관심과 돌봄을 받지 못해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더욱 강하게 요구하게 된다. 책 읽는 아이들은 어떤 계기로 일탈을 하더라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회복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1박2일, 개그콘서트로는 아이들의 인문학적인 상상력을 절대로 키울 수 없다. 책을 통해서만 아이들의 생각과 꿈을 자라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책 읽기 강요는 아이들에게 밥 먹이는 것만큼 꼭 필요하다.

최근 몇 달 동안은 아이들과 주로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이러한 책들이 폭력 때문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기는 어렵겠지만 성격이 소극적이고 자신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폭력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는 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진짜 강한 것은 어떤 것인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가치와 개념을 정확하게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정리해서 발표도 하고 ‘폭력에 대항하는 우리들의 지침서’도 하나씩 발표해서 멋지게 만들어 보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이들이 평소에 또래와 선생님, 형제와 부모로 부터 받는 언어적인 폭력, 정서적 무관심과 물리적인 폭력에 많이 노출되어 아이들 자체가 폭력에 무감각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구로동은 작은 빌라가 가깝게 붙어 있는 집들이 많아서 위아래 집의 소리가 다 들리기도 하고, 저녁 반찬이 무엇인지 알 정도로 냄새를 서로 공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셋째를 출산한 윗집의 젊은 아기 엄마가 유치원생인 자신의 큰 아이에게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처먹고 난리야”라고 하며 아이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민망한 나는 젊은 아기 엄마의 술고래인 백수 남편과 아이들 셋이 의미하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 몇몇이 엄마들은 다 저렇다고 하고 잘못하면 맞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모님께 자주 맞고 아주 심한 욕을 듣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른들이라서 아이들을 아무데나, 어떤 물건으로 함부로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 어른이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일지라도 혹시 우리를 때리거나 심한 말로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이야기했다.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겼을 때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고 “그런 건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고 꼭 말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친구나 선생님, 부모님과 한 약속이나 책임을 잘 지켜야 한다고 똑똑한 우리 아이들이 덧붙여 이야기한다.

오늘도 우리는 맛있는 자장면과 군만두를 먹으며 재미있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니콜라에게 매번 당하기만 하던 펠릭스가 어떻게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는지 자장면이 입에 묻거나 말거나 신나게 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