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을 출발하여 선상에서 16시간을 서해안 북방으로 밤을 새워 간곳은 단동. 이북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어머니가 피난 올 때 눈에 고향을 두고두고 새겨 놓았을 의주가 바로 지척인 것을, 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같이 단동에 가서 멀리서라도 고향을 보고 싶다고 하실 이곳 단동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여장을 푼 곳은 압록강 끊어진 다리와 바로 옆에 새로 이은 다리가 눈앞에 보이는 곳이다. 창으로 보니 북한으로 향하는 트럭이 줄줄이 서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시내를 벗어난 중국 쪽엔 푸르른 나무들이 있는가하면 북한쪽의 산은 푸르긴 푸른데, 나무 없는 푸른 풀들의 산이 고요한 모습으로 드러누워 있다. 고요한 침묵 땅으로 보아진다. 강 뚝 아래 군인들이 보이고 자전거 타는 이가 보이고 트럭이 보인다. 그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지척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 악수하고 싶지만 갈 수 없다. 오갈 수 없는 두 나라 백성이다. 아마 지구상에서 유일한 나라라고 했다. 서로 왕래를 못하는 아쉬움…. 마음은 왜 이리도 아릴까. 가고 싶고 얘기하고 싶은데 습득되어진 공포가 서로를 무서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끔 외삼촌 얘기를 들었다. 어머니와 이모님들 간의 대화로. “아마 죽었을끼야 갸는 참 똑똑했더랬는데...” 그 외삼촌을 이모들은 못 잊어했다. 내가 단동 가는 것을 친척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알았으면 같이 가자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눈물을 흘릴 것은 뻔하다. 이제 그 분들이 가시면 외삼촌 얘기도 의주 얘기도 못 듣겠다.

또 다른 고향이 잊혀진다. 우리 이모님들의 의리는 대단하다. 피난 온 분들의 억척이 생활력으로 나타났고 행동과 표현이 활력차서 그들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내 어린 때는 동네에서 가끔 싸움을 하곤 했다. 언젠가 동네사람과 시비가 붙는가 했더니 나머지 이모들이 우루루(4명) 달려나가 해대는 통에 싸움은 일방적으로 끝나버렸다. 바로 그들의 호방하고 활기 넘치는 단결력이 아직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이들이 단동에도 있으련만 내가 만난 이들은 오직 생존을 위해 살고 있었다. 국적도 없이 돈모아 북한에 돌아가려했으나 여권이 만료되어 돌아갈 수 없는 이들. 무국적자로 살아가는 이들은 북한사람도 중국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한국에 올 수도 없는 사람들. 목숨을 부지하고자 사는 이들이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우리는 굶어봤다. 얼마나 서글펐는지. 열어봐도 아무것도 없을 줄 알면서 술래잡기하다 바깥에 나있는 찬장문을 열어 고추장을 손가락으로 푹 떠서 입안에 넣고 술래잡기를 계속하던 때를 이따금 생각한다.

이제, 그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기도를 한다. 기도하면서 그들을 다시 만난다.

현재를 주관하시는 주님,
지금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당신을 기리며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를 늘 사랑하시는 주님,
부족하지만 말씀을 따르며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에게 오늘도 당신의 현존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세상일이 그냥 맞겨진 일이 아니라 소명으로 알고 당신과 함께 동행자로 살게 해주십시오.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주님,
계획은 우리가 하되 마침은 모두 당신의 뜻 안에 있음을 분명히 알고 겸손하게 받아들여 우리의 믿음이 변치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께서 허락하신 단동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는 무국적의 18세 소녀를 만났습니다. 외에 몇몇들도 국적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위해 365일 아픈 날만 제외하고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생존 뿐 아니라 존재의 위협까지 안고 사는 북한의 주민들이 단동에 많이 있습니다.

다녀온 후로, 북쪽의 사정에 현실감이 없이 나의 일에 열중하며 살던 내게 자꾸 그들의 배고픔과 쫓김에 마음이 쓰여집니다.
이런 때 예수가 그들을 붙들고 울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주님, 우리의 빈잔을 채워주십시오.
몸과 마음이 당신의 잔으로 넘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데 필요한 씩씩함과 너그러움을 베풀어주십시오.
주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젠 북쪽의 일까지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당신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분입니다.
그러나 늘 그래 왔듯이 새 생명의 힘을 주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따르겠습니다.
마음의 믿음을 입으로 알리고, 행동으로 당신의 현존을 행하는 은총과 복을 허락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