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날 연휴엔 설악에서 봄을 찾았다. 동요와 함께

“봄이 온다네 봄이 와요
얼음장 밑으로 봄이 와요……”

이런 동요를 부르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고 정겨운데 실제로 오랜만에 그 차디찬 얼음장 깨진 틈 사이로 돌돌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소리는 얼마나 미세한 소리인가.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들을 때의 감동과는 또다른 기쁨과 환희가 있다.

지금도 그 기쁨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생명은 조심스럽게 찾는 이에게 다가오고, 들으려고 하는 귀에 속삭이듯이 다가오는 것 인가보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작은 것을 듣고 보고 느끼고 조용한 움직임을 느끼는 순간 살고 싶다는 생각, 사는 것이 정말 기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자연은 스스로 디자인을 한다. 추울 때는 얼음으로 덮여 있다가 따뜻해지면 자연스럽게 녹아 대지로 스며들어 땅을 적셔 싹을 돋게 하고 남은 물은 계곡으로 모여들어 모난 돌을 수 만년 깎고 깎아 둥글게 만들며 강 하류까지 운반한다. 끝내는 모난 돌을 조약돌로 만드는 디자인을 지금도 쉬임없이 계속하고 있다. 물속에 사는 고기는 물살을 잘 헤치며 살아가게 유선형의 모습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 이렇게 자연은 지혜의 창고이며 디자인의 사전이다. 그 사전을 펴는 순간 인생이 열려 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날은 늘 기다려왔던 날. 손꼽아 손꼽아 기다려 왔다. 그날 아침이면 친척과 식구들이 모두 모두 모이는 날. 아침 일찍 새 신발과 양말 신고 좀 쑥스럽지만 뻐기는 날. 그러나 둘째는 늘 투정부리는 날, 새것은 형한테 양보하는 날. 그래도 그 날을 꼽아 기다리는 이유를 지금에야 알 것 같다. 풍요, 두근거림, 만남, 그리고 조그만 다툼까지 합하여 설날. 그 설날이 도시에는 없고 시골에는 아직 남아있다. 이제 시골을 도시에 심는 일을 해야겠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
장에 가신 우리 오빠
비단 구두 사온다더니……”

아직 북에 있는 오빠도 비단 구두도 소식이 없다. 나의 어머니는 이북 출생이셨다. 요즘 종종 이북을 생각한다. 제자 중 탈북 학생이 있어 드러나지 않게 그를 살펴보고 있다. 우선 굳센 의지가 있다. 하고자 하는 일, 주어진 일에 뚜렷한 결과를 내고 있다. 어떤 아픈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아직은 묻지 않고 있다. 자연히 알게 되리라. 그런 그가 돌연히 화장을 짙게 하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외모의 변화에 애써 물으려하지 않으며 얼마간 지났을 즈음에 자신이 탈북자 같이 보이지 않고 세련되게(?) 보이고 싶어서 치장을 하고 다니다 빙판에 미끄러져 며칠을 앓아누웠다는 것이다. 우리 중 누가 이들을 세련되지 않았다고 무시했던가. 내가, 네가, 우리가?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오빠도 비단구두도.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버린 쪽박인가요……”

꽉 찬 것보다 찰랑찰랑 넘칠까 말까 하는 것이 감칠 맛 난다. 선배교수들 몇 분이 나이 60이면 교수 딱 그만두고 후배에게 물려주고 멋있게 떠나겠다는 말이 그럴 듯해서 나도 60에 학교를 떠나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분도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나도 슬슬 생각이 바뀌기 시작해서 60을 넘겼다. “아직도 내가 학과에서 할 일이 많지” 속으로 되뇌이면서. 그러나 꽉 찬 것보다 채우지 않고 찰랑거리게 하는 맛과 멋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 제게 들어갈 때와 나올 때를 아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아요.”

초등학교 때는 이렇게 여학생들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드러내서 사귀지 못함을 노래로 꼭꼭 담으며 지냈다. 그래서 그때 여학생들은 아직도 소녀로 남아 있으며 나 역시 아직 소년이다. 며칠전 학교 정류장에서 꼭 붙어서 뽀뽀하는 젊은이에게 축하를 보낸다. 오래오래 그렇게 사랑이 지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