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이란 몰티즈 종 種의 개를 키운 지 2년 반이 훌쩍 넘었다. 난 원래 애완견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닥 좋아하지도 않았다. 좀 무서워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친지의 집을 방문할 때 애정표시로 머리 부분만 살짝 쓰다듬을 뿐 소파에 발을 올리고 안아보는 것은 절대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에게 ‘대학 들어가서 스스로 케어할 수 있을 땐 허락하겠다’던 약속을 들어줘야 하는 날이 왔다. 1학년 내내 수업, 동아리 활동, 미팅 등으로 바쁘게 지내다가, 겨울 방학동안 아빠를 조르기 시작해 방학이 끝날 무렵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왕초보자가 키우기에 적당한 것을 ○○펫샵에 보관중이니 찾아가라는.

처음으로 래빗을 우리 집에 데리고 오던 그 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평소에 우리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는데 흰색은 싫고 동화책에서 흔히 접했던 갈색 점박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 도착해보니 털이 북실한 새하얀 강아지가 미용을 곱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모녀는 실망하여 어정쩡하게 행동하였는데 그곳 실장이 한번 키워보시면 좋아하실 거라 훈수하며 가방, 밥, 간식, 눈꼽빗 등 용품 등을 챙겨주었다.

우리는 이미 선택된 상황에 순응할 수밖에 없어 실망, 기대, 걱정 등이 범벅이 된 상태로 ‘래빗’으로 불리던 7~8개월짜리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우선 유학 가있는 아들의 빈방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적당한 크기와 깊이의 바구니에 폭신하게 포장 버블을 깔고 그 위에 미색의 극세사 매트를 까니 꽤 훌륭했다. 샵에서 내놓았던 유치하고 촌스러운 기성제품보다 훨씬 맘에 들었다. 그 옆에 밥그릇, 물그릇을 놔주고, 처음 온 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놓았다. 새 주인과 새 집이 어색하였는지 뻘쭘한 표정이다.

어쨌든 강아지나 사람이나 첫날을 잘 넘기고 시간이 흐르며 서로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예전엔 ‘애견족’이 정말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키워보니 자식과 똑같았다. 딸 때문에 엄청 출세한 것이다. 이런 기쁨을 맛보게 되다니 말이다. 세상 어느 부모나 자기 아이가 한동안은 천재인 줄 알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신기함과 무조건적인 내리사랑으로 손주사랑을 자꾸 하게 되듯이, 래빗이 우리 가정에 오고 한참동안 내 입에서 래빗 얘기가 떠나지 않았다.

사실 난 그 시기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오랫동안 식구들처럼 지내왔던 사이였는데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문제가 생겨 갈등 속에 있었다. 대화로 푼 경우도 있었으나 공허한 마음은 남아있었고, 어떤 경우는 대화로 풀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마음이 동하지 않아 어색하고 막연하게 시간이 흘러 해결되기를 잠잠히 기다리기도 했다.

그 힘든 시기를 신앙 속에서 기도하며 평정을 찾기도 했지만 나약하고 허전한 심정을 래빗을 통해 위로받고 견딜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큰 위로는 마음과 뜻이 통하는 새로운 만남들의 축복이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마치 10년 이상을 알아온 느낌을 받는 그런 만남들이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그들은 이제 래빗과 마찬가지로 나의 오래된 지인들과 더불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였다.

이러한 긍정적인 삶의 요소들로 인해서인지 내 자신의 변화를 느꼈다. 열정적이고 똑부러지는 성격으로 인해 다소 날카로웠던 면들이 많이 깎여 한결 부드러워진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 내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는데,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이었던 딸애가 래빗을 키우며 말수가 늘고 목소리 톤도 조금 높아졌다. 식구들 사이에서 대화거리가 늘어난 것도 긍정적 효과이다. 작은 생명체 하나가 우리 가정에 옴으로써 이렇듯 많은 변화와 치유를 경험하였다. 진심으로 ‘반려동물’이란 말이 이해되고 와 닿는다. 우리 인간이 베풀어준 사랑보다 그들에게 얻은 게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생각하기에 따라 길기도 짧기도 했던 2년여의 시간 속에서, 갈등을 겪었던 관계들과의 장막이 걷히기도 했다.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서로의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이해한 것이다. 이 모든 변화와 성숙을 경험하게 하신 우리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