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은 우리에게 인격으로 비유되어 왔다. 큰 그릇으로 표현되는 사람은 호연지기로서 세상을 담을 만큼 큰사람을 일컬었고 속 좁은 사람은 그릇이 작다고 했다.

그런 그릇 중 내가 으뜸으로 생각하는 그릇은 사발이다. 사발은 조선시대 일반대중의 그릇이었다. 실록에 “일반백성은 나무 그릇과 사발을 사용하고 왕실의 그릇은 백자를 사용하라”고 적혀 있다. 만일 일반백성이 백자를 사용하다 밀고를 당해 발각이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사대부가 사용하다 발각이 되면 과거를 몇 년 동안 보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듯 사발은 일반대중의 그릇이었던 바, 각 고장의 사기막골에서 장인들의 손에 많이 빚어져 공급되었다.

그 장인들 역시 고난의 역사를 밟았다. 고려 말 왜구의 침탈로 “남, 서해 해안가 50~60리에는 사람들이 살수 없었다” 라고 서술될 만큼 국력이 약해져서 해안가의 도기장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내륙으로 도망하여 사발을 빚으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 계급 역시 천민에 속하였다. 당시는 모두가 배를 채우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어려운 시대였던 만큼 천민인 도기장들이 얼마나 혹독한 생을 걸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거기서도 잘 만드는 사람 못 만드는 사람의 능력의 차이가 있었으니 잘 만드는 이는 하루에 700~800개를 만들었다. 지금의 소요시간으로 1분에 1개씩 만들어 냈다는 계산이다. 이는 잘 만들려는 생각보다는 몸으로 익은 솜씨에서 나온 것이리라. 머리를 쓴다든지 가슴으로 만든다든지 손의 기교가 있는 것이 아닌 온몸으로 치열하게 만든 것이었다. 거기에는 그들의 생이 고스란히 배여 있어, 무심의 그릇이라든지 인격이 담겨져 있다느니 하고 회자되는 그릇이 된 것이다.

400여년 전 통일일본시대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평화의 시대에 걸맞게 다도를 전국에 행하였다. 그러면서 공이 큰 사무라이에게 천하제일의 찻그릇은 조선의 것이라고 하며 하사하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조선의 사발을 찻그릇으로 갖고 싶은 차인들, 소위 지배계급인 사무라이들이 조선을 침략하는 목적이 되었다.

소위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사발은 그들이 생명을 바쳐 얻은 선물이기에, 그들은 사발에 인격을 부여하여 대대로 가보로 물려주고 있다.

1951년 조선의 사발을 일본인들은 국보로 지정하였다. 무심의 그릇, 인격을 담은 그릇…. 무한한 찬사를 늘어뜨리며 400여년 전에 우여곡절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의 사발이 일본의 국보로 변신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경전시 때 오롯이 서 있는 사발을 보기 위해 기나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소위 일본 상류계급에게 사발의 삶이 어떻게 비쳐지는가는 그들이 이웃나라에 대한 관심에 따라 달리 읽혀질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요즈음 어려운 상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우리 조상들이 겪어 냈던 치열한 삶을 기억해 내서 새로운 힘의 근원으로 삼는다면, 헤쳐 나가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미 美의 본질이 “무기교의 기교”라고 고유섭 선생은 적고 있다. 사발이 그런 그릇이다. 무기교를 기교로 사는 삶은 어떨까? 조선의 사발처럼. 험한 여정을 겪으면서도 이국에서 국보로 오롯이 서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