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래 공짜를 안 좋아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이다. 다섯 살 때 우리 동네 아이스케키 가게가 생겼는데 아이들은 그 집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놀면서 그 집 아저씨가 아이스케키를 주면 신나게 받아먹었다. 그런데 나만이 그것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주는 돈으로 사먹기는 했지만 거저 주는 것은 절대로 받아먹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웬 자존심은 그리도 세었는지...

그런데 지금은 지하철 표를 공짜로 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10월이 되면 나도 우리나라에서 지정하는 노인의 반열에 들어간다.

환갑이 넘고 나서는 ‘이제 나는 노인이다’라는 의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고혈압, 동맥경화에다 하마터면 뇌졸증까지 갈 뻔하여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기운이 떨어지다 보니 이것저것 하던 일을 줄이고, 노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도 여기저기에서 고령화 사회를 말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왕 살 바에는 제대로 살아보자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도 공짜이고, 공원도, 미술관도 공짜 아니면, 반값이다. 노인정에 가면 무료로 밥도 먹을 수 있고 재미있는 일도 여러가지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노인들이 계속 공짜로만 살 것인가? 옛날 노인과는 달리 요새 노인인 60대 70대는 아직도 기운이 팽팽 남아도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이 할 일이 별로 많지 않아 걱정이다.

가만히 앉아 할 일이 생기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노인들 스스로가 사회 구석구석에서 할 일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물론 노인들은 공짜 지하철을 탈 자격이 있다. 일생동안 자녀들을 길러 내고, 세금도 내고, 사회봉사를 하며 자기 돈을 희사하기도 하였다. 마음 졸이며 나라가 잘 되기 위한 여러가지 사회운동도 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힘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또다시 남은 일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국가 발전을 위하는 일도 되지만 남은 자기 인생의 즐거움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일생동안 교회와 사회에서 공동체 운동을 해 왔다. 가정 안에서는 오랫동안 관행처럼 되어 온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 시누이와 올케 문제를 좋은 관계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행히도 우리 며느리는 내가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나를 사랑해 주었다. 두 딸과 한 며느리 사이는 서로 친구들처럼 살고 있다. 이제 둘째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그 또한 잘 지내리라고 믿는다.

우리 세대는 젊은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성숙한 면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수도 있다. 노인들의 남은 인생을,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젊은이들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성숙한 면을 찾아서 함께 보완해 가는 일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멋있어지지 않을까.

특히 벌어 놓은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멋있고 재미있게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은퇴하고 난 후에는 대부분 해외여행을 다니거나 친구들끼리 자주 모이는 것을 본다.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그 다음에는 별로 할 일을 못 찾고 있다. 공부도 하고,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사회를 위하여 공헌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다. 요즈음 30대, 40대들은 남녀가 모두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봉사를 하고 싶어도 손이 나지 않아서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이 그 빈 구석을 채우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어느 기관에 가서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이든가, 공짜 지하철을 타고 놀러도 다니고,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도 함께 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노년생활을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