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 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12:2)
이십 년 전에 "영성"이란 말을 쓰기 시작하였을 때, 개신교 안에서는 적잖은 저항과 거부반응이 있었다. 그 첫째 이유는 가톨릭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 말을 계속 하여 쓰면서 영성운동의 새로운 차원을 열기 원했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때까지의 성령 운동이 대한 새로운 이해와 더불어, 부흥운동과 교회성장 운동으로 드러낸 역기능과 한계를 극복하는 데 힘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한 믿음으로 섬기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향(轉向)을 위한 것이었 다.
지난 이천 년 동안의 교회사를 살펴보면 영성운동의 큰 흐름을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의 변화가 세계의 변화와 그 성향이나 특징이 맞물려 있었다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얼마나 막중한 뜻을 지니 고 있는 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영성운동은 무엇보다도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도도히 밀려오는 새천년 의 물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그 뜻을 과단성 있게 결단하며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온전함의 영성을 지향하며, 분별과 결단의 배합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첫째. 개인의 경건운동이다. 영성의 수직적 차원만 강조하면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만 치중하는 성향이다. 이것은 영성의 기초이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 강조 할 때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위선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위험이 있다. 현대 지식사 회학자들의 지적으로는 "지적 허위성"에 빠질 위험이 있다.
둘째. 성령 은사운동이다. 개인주의적 경건운동이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졌을 때, 그 반대 반향으로 역사변화의 추가 이동한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 의하여 신도들이 성 령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새로운 운동이 전개되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나의 구원과 축복 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이제 밖을 향하여 복음을 들고 나가 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운동이 전개된다.
셋째는 명상운동이다. 관상기도 운동이라고도 한다. 성령을 받고 은사운동을 하는 가 운데 너무 열정만 살리다 보면 열광주의에 빠지는 위험이 또 있다. 존 웨슬리가 지적하였 듯이 광신과 맹신은 현재의 불신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열광주의적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 명상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영성의 내면화 내지는 심화 과정이 자칫하면 너무 차분해지다 못해 가라앉아서 정체될 위험이 있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작된 네 번째 운동이 산업혁명기 이후의 복음주의 운동이다. 전도하는 과정에서 역시 개인의 구원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필요성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의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초대교회 안에서 처음 시작되었던 개인주의적 경건운 동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다섯째. 산업사회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도시화, 산업화, 비인간화 등의 문제는 날로 심각해졌고 더욱이 사회의 구조악에 대비해야 할 선교적 과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교회가 사회정의 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른다. 이와 함께 여성운동, 평화운동, 환경 운동이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폭력과 대결의 문제가 풀기 어려운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고, 급기야 1970∼80년대의 대결의 시대를 넘어오는 과정에서 새롭게 전개 되기 시작한 것이 여섯 번째의 공동체 운동이다. 이십 세기가 저물어가는 과정에서 이런 운동은 교회 안팎에서 환경 문제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안게 되었고, 그 결과 필연적 으로 통전적 영성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에 전 세계 교회는 지역이나 교파에 따라서 차이는 있어도, 모두 가 온전함의 영성을 지향하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이것이 1990년 3월 서울에서 모인 세계교회의 JPIC(정의·평화·창조의 보전)대회였고, "서울선언"은 그 열매로 나왔다. 이와 함께 1993년 스페인의 고도 콤포스텔라 데 산티아고에서 모인 제5차 WCC 신앙과 직제 대회는 코이노니아를 주제로 모였다. 여기서 이른바 나눔과 섬김의 영성에 대한 신학과 신앙고백이 크게 다듬어지게 되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영성에 대하여 남달리 민감한 사람이기에 일찍이 말하기를 물질주의 에 전적으로 빠져 사는 사람은 반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사람보다 더 병적인 사람이라 고 하였다. "하나님 형상의 정치"를 곧 "의미의 정치"라고 주장하는 마이클 러너는 현대 사회는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와 극심한 경쟁이라는 병에 걸려있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냉소주의에 빠졌다고 한다. 토마스 무어는 이십 세기의 중병은 "영혼의 상실"이라 말하면 서 이것이 나타나는 증세는 목적과 의미의 상실이요, 중독과 폭력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갈망하며 따르기를 원하는 신자들은 하나님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 이름 뿐인 명목상의 신자가 아니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결단해야 한 다. 초대교회 신도들이 그 막강한 로마제국을 이겨내며 살았던 것처럼 오늘의 신자들도 물질주의에 깊이 빠져있는 세상을 이겨내며 살아야 한다.
개인의 내면의 영성과 인간 상호관계의 영성과 체제의 영성과 더불어 환경의 영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지상의 하나 뿐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켜오는 신앙의 유산과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 속에서 소외당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상황과 필요에 민감 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세계를 향하여 한국교회가 지닌 소명과 비젼에 충실 한 신앙고백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성공주의에 빠져서 힘을 가지고 지배하고자 하는 자세도 유혹도 버리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우들이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모두가 공동선을 위하여 지속가능한 세계와 미래를 향하여 나가야 한다. 가난의 영성이 바탕을 이루어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나눔과 섬김의 영성으로 정의와 평화가 깃든 세상, 창조의 질서가 보전되는 세상을 향하여 손에 손잡고 나가는 데서 우리는 온전함의 영성이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