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나는 참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었다. 하지만 그게 적응이 되어서 일까 어느 순간에는 혼자 있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릴적부터 혼자 놀아야 하는 시간이 많았던 나에게는 내가 동경하는 것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가 가장 마음 편하고 행복했던 순간이다. 그 안에서만은 나는 최고였고, 완벽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항상 부모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로 인해 수반되는 관심과 나를 대하시는 태도가 민감하고 여린 나에게는 왠지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떨 때에는 부담이 되기까지도 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나의 민감함이 말수도 적고, 어떤 일에든 먼저 겁을 먹게 하고, 내 자신에 대한 생각에 빠져 지나친 감성을 가지게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 자신을 비하 시켜서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에는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외출도 싫고 그저 내 방에만 틀어박혀 있고 싶다. 사실 이제야 고백하지만 그럴 때 걸려오는 친구들의 전화도 일부러 안받거나 아프다는 핑계로 넘겨 버린 적이 많이 있다. 많이 힘들 때는 이런 소위 ‘방콕’생활을 몇 달에 걸쳐 해 본적도 있다. 내가 ‘우울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정도로 말이다. 그러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털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내면에 크게 작용하게 되면 또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복귀하곤 해왔다. 그러나 반대로 기분이 좋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면 그 누구보다도 밝은 표정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곤 한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에도 기분에 따라 극과 극의 표현을 하기 때문에 종종 친구들이 눈치를 보게 만들거나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순간, 친구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난 나의 내면의 소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그렇게 지내곤 했다. 그래서 인지 아무리 많은 무리 속에서도 나는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게 내 자신의 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다른 사람들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물론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의식할 때가 있다. 내가 부럽다고 생각하거나 나와 비교했을 때 더 행복해 보이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져서 이내 그보다 더 좋은, 아니면 반대로 아주 다른 뭔가를 계획하곤 한다. 참 유치하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어떤 때에는 그런 나의 불편함이 일에 있어서 나의 창조력을 자극하는 힘이 될 때가 있어 지나고 나면 뿌듯하기도 하다.

또, 나는 남들과 비슷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별로다. 왠지 모르게 난 튀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 같다. 쇼핑을 할 때에도 아무리 예뻐도 남들이 많이 사는 것은 고르기 싫고 옷 입는 것이나 화장을 할 때에도 나를 남들과 구별되게 하는 무엇인가에 포인트를 두곤 한다. 이런 성향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 뿐만 아니라 생각 속에서도 나타난다. 어떤 일에 대하여 - 절대 내가 나서서 말을 먼저 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 의견을 물어올 때면 평범한 것을 기피하는 나 나름의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말을 하는 편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낀다고 얘기하곤 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고독감을 느끼면서도 튀고 싶어하거나, 무리 중에서 돋보이고 싶으면서도 누군가가 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싫은 나의 속마음에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나에게 주어진 어떤 일이 있을 때, 나는 완벽하기를 은근히 바란다. 사실 내가 완전무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의 실수를 누군가 발견하여 그 말이 나에게 들어온다면 너무나 스트레스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해 지는 것이다. 흠이 있는 것은 질색이다. 어떻게 보면 소심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은 정말 죽기보다도 싫은 일이다.

나는 음악, 미술 등의 예능 방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내 일이 관련 분야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그런 계통의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그리고 남들이 웃을지는 몰라도 그런 면에서 소위 말하는 ‘끼’가 있다는 생각도 가끔은 한다. 그래서인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술관에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노래방에서 실컷 노래를 부르면 아주 통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평상심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잘 그러지 않다가도 뭔가 꽉 막힌듯한 답답함이 계속될 때면 술을 무절제하게 마시거나 어떤 한가지 일에 탐닉하기도 한다. 좀 위험한 행동패턴이긴 하지만......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살았던 나는 에니어그램을 배우면서 요즘 참 행복하다. 조금 다른 각도이긴 하지만 그렇게도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에너지를 쏟는 것이 매우 익숙하고 즐겁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에 대해 좀더 알아가기도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 보기도 하면서 많이 변해가는 나를 느낀다. 그저 내 감정만 다쳤다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던 나에게 분별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고, 또한 사랑이 뭔지도 알았다. 긍정적인 사랑의 역할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매번 혼란스러워 했었지만, 이제는 내 자신을 제대로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진자 나 자신을 찾은 느낌이다.

요즘, 나는 내 자신을 칭찬해주는 사랑표현에 빠져있다. 항상 책망만 받다가 칭찬을 받으니 더 ‘쿨’해지는 기분이다.

상상 속에 나를 가두고 현실 바로 보기를 두려워하던 내 모습을 직시해 보려는 마음도 먹었다. 물론 조금은 낯설겠지만 조금씩 관찰 하다보면 어느새 현실적인 내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타인에 대한 시선은 오히려 객관적일 수 있는데 왜..나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깊은 연민을 품고 살게 되었는지 그간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아이라고 느끼면서 내 손발을 묶었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럽다. 누구보다 잘 해 낼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내 안의 격정을 이겨내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서 사랑이 가득한 내 상상 속의 세상이 바로 이 순간 내 곁에 존재 한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금 확인해본다. 이제는 침착할 수 있을 듯 하다. 지속적으로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하겠다.

아름다움이여~! 영원한 나의 화두! 그리고 에니어그램을 통해 보는 세상의 아름다움!

나는 사랑 받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