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언제나 내가 듣고 싶은 말이기에 나는 남들도 그럴 것이라 짐작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형제들 중에서도 유난히 예뻐하셨고, 특히 우리 아무개가 제일이라며 인정해 주셨기에 난 동네에서건 학교에서건 샘이 많고 콧대 높은 아이로 유명했다. 그 한마디를 위해 공부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몰두하곤 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언제나 흡족하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가끔 한순간의 욕심으로 무언가 내 손에 움켜쥐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기도 했고, 사실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편법으로 내 목표를 달성하기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가끔은 그 편법을 내가 느끼지 못하고 행동하고 나서야 깨닫는 경우도 있고, 스트레스가 많을 때는 그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막 합리화 하려고 한 적도 있다.

난 내가 초라하거나 부족해 보이는 걸 참을 수가 없다. 언제나 당당하고 다른 사람들이 바라봐주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그렇게 되기란 힘들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적어도 비슷하게나마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이런 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히 이런 노력에 둔감한 사람들을 보면 한심해 보인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나는 어떤 일이든 다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노하우이기도 하지만 그런 방법을 모르고 있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우쭐해지고 뿌듯한 생각이 든다.

또, 어떤 모임에 가든 수업 시간이든 그 모임의 ‘권위자’로부터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어진다. 그래서 눈을 반짝거려 보기도 하고 좀 나서기도 해서 눈에 띄게 행동한다. 어쩔 때는 신기하게도 무언의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대학시절 미팅을 나갔을 때 이 느낌의 진가가 발휘되곤 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무리 중에 돋보이는 것이 간혹 귀찮을 때도 많지만 사실 묻혀서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밥그릇 못 찾아 먹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종교생활을 하는 나에게 이런 내 심중은 종교적 개념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사회적 성공이라는 게 다 부질없다고 배우는데, 나는 왜 이렇게도 이런 욕구를 놓칠 수가 없는 건지…. 사실은 에니어그램을 알아가면서 3번 유형에 표현된 문구들이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었다. 난 그저 남들이 나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하고 싶은 것뿐이지 남들을 내 뒤로 하고 싶다거나 상처주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데 말이다.

‘자기관찰’을 시작하면서 ‘과연 어떤 것이 나의 진짜 속마음인지’ 나의 습관적인 행동패턴과 마음이 대비될 때 무척 혼란스럽다.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내 모습! 어떻게 보면 애처롭기도 하고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누구보다도 사회적인 성격인 듯 하다.

나는 기분이 좋을 때 내 능력을 한껏 발휘하면서도 남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거나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 내지는 행동을 보였을 때, 나는 독기 품은 여우(?)가 된다. 내가 그보다 더 인정받고 싶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의 콧대를 눌러주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득 내 주위를 돌아볼 때 난 너무 적이 많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되기도 한다. ‘날 가만 놔두면 되지 왜 자존심을 건드려서 내가 오만한 마음을 품게 만드냐구….’ 이런 생각이 밑바닥에는 깔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의기양양 하다가도 스트레스가 더욱더 심해지면 난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린다. 공부고 일이고 내가 해야 할 것 모두를 마치 내일 죽을 사람처럼 무책임하게 손을 놓고 내면의 밑바닥을 헤매고 만다.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오기란 여간해서는 어렵다. 스트레스의 무게에 따라서 며칠, 몇 달, 심지어 몇 년째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쳐지고 마는 것이 나의 또 다른 면이다.

그런 거 보면 난 극과 극을 달리는 사람 같다.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을 때는 오히려 과장되어 보일 정도로 밝다가도 떨어지기 시작하면 끝을 모르게 가라앉아 버리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극과 극의 모습이 나의 진정한 모습은 아닐 게다. 사랑받고 싶고 또는 사랑 못 받을까봐 생기는 마음의 공허함을 감추기 위해 과잉행동을 하거나 지나치게 밀어붙인다고 해야 맞을 거 같다. 난 가만히 있는 이 자체로도 예쁘고 착한 사람이라는 거, 내가 하는 과잉행동이 다른 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할 수 있는지 항상 확인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제 마구 달리기만 하지 않아도 되는 이 나이 즈음에 와서 인생에 있어서 ‘성공’이라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사회적으로 지위를 얻고 돈이 많고 남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게 과연 인생의 ‘성공’인가? 그리고 그걸 마음먹고 강행한다고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인가? 내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최선을 다하지 말고 나의 내면의 소리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면 그 누구보다도 떳떳하고 마음 편할 텐데….

나의 허물과 빈틈을 직시하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보다 에니어그램에 대해 처음 접할 때 더 많은 거부감을 가졌던 것 같다.

언제나 지금처럼 수수한 모습과 소탈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나의 빡빡한 스케줄 수첩 안에 이 문구들을 적어 놓았다 ; 내가 포기해야 할 것 - 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운에 대해서 질투심을 느끼던 것을 포기한다! 나는 반드시 내 실수와 한계를 감춰야만 한다고 느끼던 것을 포기한다! 나는 내 자신의 불안정을 보상하기 위해서 오만한 태도를 취하던 것을 포기한다! 내가 확인해야 할 것 - 나는 내가 성취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내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나는 내가 남을 보살피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다른 사람들의 성취나 성공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나는 지금 확인한다!

항상 튀고 싶어 하던 나에게 지긋이 “평범한 것이 제일 어려운거란다~”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의 말씀이 이제는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알 것만 같다. 특히 에니어그램을 처음 배울 때 가슴에 와 닿았던 말이 이제 와서 더욱 실감이 난다. “결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하라.” 나같은 3번 유형에게는 ‘진인사 대천명’이란 말과 함께 좌우명으로 삼으면 좋을 듯하다.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만 최선을 다하고 충실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마음 따뜻한 거 최고! 사랑을 나눠주는 거 최고! 다른 이들을 보살피는 거 최고! 바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