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아버지를 많이 두려워했었다. 내 눈에 그는 절대자였었고, 무엇인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매우 호되게 벌을 서곤 했었다. 그래서 인지 난 지금까지도 그분 앞에서나 그 분과 비슷한 남자어른이나 선생님 앞에선 긴장하곤 한다.

벌 서는 게 싫어서였을까.. 언제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학교 숙제나 나에게 맡겨진 심부름 등 거의 모든 일 처리의 완벽함을 추구했다. 솔직히 여럿이 하는 일 같은 경우에는 남들이 하는 것이 못미덥고 꼭 내 손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전전긍긍 한 적도 많다. 내 생각이 옳고 내 뜻대로 해야만 일이 순조롭게 풀릴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큰 만큼 내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일 처리가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짜증이 나거나 무척 화가 나고 끝내는 터뜨리고 말아 종종 주 변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기도 했다. 나만 잘난 체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무슨 일에든 원리, 원칙이 있는 게 아닌가?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한편, 그 원리 원칙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내 비판과 분석적인 면을 부각시키기도 하였다.

나는 친구들을 두루 사귀기보다는 친한 몇 명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인지 그네들에 대한 나의 마음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고, 그런 만큼 기대감이 커서 순간 내 뜻에 합당하지 않을 때는 화를 곧잘 내곤 해 그네들을 당황시키고 마는 버릇이 있다. 실은..나는 화를 내고 싶은 맘이 아닌데다 내 딴에는 참는다고 참는 것이 뒤돌아서면 매번 후회하면서도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난 어떤 상황을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반대로 내 감정표현에는 서툰 편이다. 난 자라오면서 내가 추구하는 완벽함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 같다.자신보다는 주위를 탓하고 "이제는 지쳤다"며 자신감을 잃어갔다. 간혹 나의 이 완벽함의 기준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향해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이런 생활들을 의미 없이 반복하고 있던 때 나는 에니어그램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내면으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이고 윤리적인 세상은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 실수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가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인들을 괴롭히고 있어왔던 것, 완벽함에 대한 나의 옹졸한 기준! 게다가 그 기준을 나에게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적용시키려 했다니…….

이런 나를 발견하게 되면서 내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상처와 그로 인해 혼자 남게 되는 두려움이 이 순간의 나를 채우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착하디 착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나는 긴장하고 화를 내고 또 그렇게도 인상을 구기고 다녔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나의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능력이 내 자신 조차도 모르고 살아온 동안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이었는지 부끄럽기까지 했다.

이제는 아버지를 편하게 대할 수 있으려나?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그에게 한걸음 다가서기를… 더 늦기 전에 기대해 보고 싶은 소원으로 가져본다.

그러나 1번 유형은 에니어그램의 표현대로 '개혁가'이며, '이상주의자' 이다. 합리적인 사고와 양심적이고 완벽한 일 처리로서 능력을 발산해 내곤 해서 어느 조직에서건 미더운 존재로서 인정을 받곤 하며, 게다가 건강할 때는 7번 유형처럼 그 누구보다 유쾌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바로 내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겠지~.물론 불건강할 때는 4번 유형처럼 자신을 책망하면서 우울에 빠지게 되지만 말이다.

또 재미있는 것은 내가 그토록 기피하는 것이 '분노'임에도 불구하고 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는데, 이제서야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하게 되는 에니어그램의 ‘격정’에 대해 이해하고 나니 격정을 다루는 방법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화를 참지 말지어다!!

서툴지만 순간순간 나의 감정을 조금씩 표현하다 보면 언젠가 항상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 나의 얼굴을 모두가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과연 완전함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본다. 단지 규율, 원칙에 부합 되어야만 완전함인가? 물론 그건 아니라는 것쯤은 실천을 못해서 그렇지 에니어그램을 접하기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어떤 일을 완벽하게 성취해내는 것에 초점이 있는 아니라 그 일로 인해 내가 좀더 성숙해 지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좀더 완전함에 가깝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의 완전함이라면 내 마음의 평정을 찾는 것이 좀더 쉬워지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평온함을 내 속에 끌어안는 순간 다른 사람이나 모순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력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는지…….

남들에 대해서도 완전을 기대하던 생각을 성숙으로 바꾸자면 더 큰 도움이 되리라. 완전을 기대했다가 불완전을 보면 화가 났지만, 성숙을 바랐다가 미숙함을 보면 오히려 동정하게 될 터이니까. 나는 평정과 착한 마음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내가 정말 포기하고 싶은 것들은 항상 내가 틀렸다고 야단맞을까 봐 두려워하던 것, 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던 것,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완전하게 되도록 몰고 가던 것이며, 또 앞으로 계속 확인하고 싶은 것들은 내 자신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며 또한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내가 실수를 했을 때에도 스스로를 야단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을 부드러움과 존경심으로 대하겠다는 것이다.

자기관찰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내면의 여행길에 들어서 보니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한 기차표와 같은 작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화가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격정에 휩쓸리고는 수초 내에 다시 후회하고 마는 이런 기계적인 삶을 지양하고 싶다. 무표정하거나 냉정해 보이는 굳은 표정대신 조금은 실없어 보이더라도 언제나 미소를 머금은 나의 얼굴에서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여유를 느끼면서 나를 스쳐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