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6/2006

 

 

 

 

 

 

 

 

 

 

 

 

영혼의 논리와 언어

 

영혼의 종교(The Soul's Religion) (28)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토마스 무어 지음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본회퍼의 관찰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자신을 던져 삶에 투신할 때, 우리 자신의 고통이나 이기적 관심사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대로라면, 이 세상에서 겪는 하나님의 고난에 대하여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는 자기 몰입을 훨씬 뛰어넘어서 한층 더 깊이 삶의 미스테리 속으로 육박해 들어가는 것이다. 고통의 문제를 단순히 해결하려 드는 대신에 고난의 역할에 대하여 음미할 수 있는 도전을 받으며, 적어도 고난의 의미에 대하여 계속해서 물음을 묻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고난을 극복하려 노력할 때 나타나는 영웅심은 애써 봤자 소용이 없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성찰은 우리를 민감하게 만든다. 성찰의 결과는 의식과 가치관의 변화로 나타나는 반면에 영웅심의 소산은 약물과 기계와 방법의 증가는 있어도 세상의 고난을 의미 있게 감소시키는 법은 없다. 물론 현대의학이 생명을 연장시키고 육체적 고통을 감소시키는 데는 놀랄만한 진전이 있었으나 고난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적인 술어로 환원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융과 본회퍼의 이미지로 보자면, 질병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궁극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희생양을 찾으면서 고난을 다루는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어려운 지경이 되면 신들을 노하게 만든 사람이라고 의심되는 사람을 골라 배 밖으로 던진다. 성서에서는 요나가, 문학에서는 트리스탄이 이런 종류의 희생양이다. 희생양을 찾는 일은 제물을 바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희생양은 비난이나 책임전가의 표적이며, 현대 사회에서는 빈번히 모더니즘의 한 측면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흡연, 기름진 음식, 운동 부족, 부모노릇 잘못 하기 등 수많은 종류의 희생양을 찾는다. 우리는 정서적인 문제들을 소급해서 가족에게 돌리거나 육체적인 문제들을 쾌락으로 돌리면서 우리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우리가 만들고 있는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문제들이나 질병들은 사실 그것보다 더 미스테리스럽다. 우리의 성찰은 희생양을 넘어서 제물로, 개인적인 비난을 넘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불가사의를 감상하는 데로 더 많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고난에 대한 영성적 접근은 우리의 오만을 희생해서 순전한 겸손의 태도를 취하고,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환상을 희생하며 우리 앞에 있는 세계와 다시 친숙해지고, 우리의 자아 불안을 희생하고 공동체와 동물과 자연계에 대한 더 큰 관심과 배려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이런 것이야말로 고난에 대한 깊은 영성의 응답으로서 자아를 벗어난 것이다. 대조적으로 마조키즘은 이기적 고난으로 정의될 수 있다.

고난이 또한 교훈을 주는 것은 우리가 서로 의존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병이 나면 의사를 찾아간다. 우리가 정서적으로 괴롭고 마음이 산란하면 심리치료사를 방문한다. 삶의 압박을 느낄 때 우리는 친구를 찾는다. 고난이 채널을 열어서 어쩌면 난생 처음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경로가 되게 한다. 우리처럼 다른 사람들도 역시 고난을 겪고 있는데 그들과 맥이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 적어도 지지를 보내주는 것을 알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전통적 종교언어로 표현하자면, 고난이 우리를 기독성이나 불성의 핵심으로 끌어다 준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넘어서고, 그럼에도 가장 우리 자신이 되면서 영혼의 깊이를 지니고 위대한 비전을 공유하게 된다.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실존 전체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렇게 해서 전적으로 경험의 범위를 발견하고 확장시키는 일에 초대된다. 고난은 학교가 되어 자기몰입을 떨쳐 일어나서 세계와 무한대로 더 큰 연결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력을 키우게 가르친다.

고난을 미스테리로 , 하나님의 고통으로 보는 것은 고난이 사물의 본질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붓다는 고난이 어떤 욕망, 어쩌면 자기 의지나 좁은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가르쳤다. 확실하게 우리는 고난이 끝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데, 그것이 의약이나 사회 행동의 타당한 목표라 여긴다. 위대한 의사 파라셀서스는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그토록 무지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예외 없이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고난 속에서 신성한 미스테리를 보는 것은 실의에 빠져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고난을 직시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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