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3. 4)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55

토마스 무어 지음


최근에 나는 요즘 이야기 하고 있는 근본주의와 관련된 예와 맞닥뜨렸다. 사무실에 앉아서 전화를 받던 중, 맑고 차분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저는 근친상간을 겪은 사람인데요.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라는 사람과 통화하게 되었다.

나는 이름도 밝히지 않고, 몇 마디 대화도 오가지 않은 상태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두 마디 말로 자신의 삶을 설명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갑작스러움에 당황하였다. 물론 이 사람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였고, 마치 알코올 문제로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이 “나는 존입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예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용기를 내어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있음을 가상히 여겼다. 허지만 나는 그가 처음으로 말을 하면서 “저는 근친상간을 겪은 사람”이라고 되뇌는 것에 끌렸다. 처음 시작하는 말에서 그는 자신이 근친상간 이야기와 동일시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본주의자의 신앙고백처럼 들렸다. 나는 그래서 처음 몇 순간, 만약 이 여인이 외래환자가 된다면 어떻게 그의 근친상간 경험과 그의 근본주의를 동시에 다룰까하고 생각하였다. 자신의 고통이나 고난 그 어느 것도 부인하지 않은 채 그가 자신의 근친상간 이야기를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어릴 적부터 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아 온 것보다 결과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개인이 될 수 있을까? 문화적으로 정의가 내려진 근친상간을 불가피한 심리학적 상처(외상)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자신의 신화의 일부로 삼았던 것은 아닌가?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영혼은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것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것은 개인의 정체성에도 들어맞는다. 어느 집단이나 증후군이나 진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추상적 개념에 빠지고 만다. 영혼은 개체성에 대한 강렬한 의미를 안겨주는 바, 개인의 운명과 특별한 영향과 배경 그리고 특유한 스토리를 갖게 해 준다. 위급한 환자나 만성질환자 관리 양쪽에 모두 압도적인 필요에 직면하여 정신 보건 체계는 사람들에게 정신분열증 환자, 알코올 중독자 그리고 생존자/희생자라는 딱지를 붙여서 가정이나 거리에서 삶의 혼돈 상태에 어떤 질서를 부여한다. 그러나 공통적인 주제는 아무리 많다할지라도 개개인이 각기 특별한 이야기를 할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에 대한 영혼의 돌봄은 자신만의 소박한 이야기를 하는 데서 시작해야 마땅하다. 사실상 나는 그 스토리 속에 있는 뉘앙스를 포착하기 위하여 몇 번이라도 같은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내 생각에는 이 여인이 자기 자신의 스토리 속에서 자신을 눈여겨 보고 자신의 집단적인 근본주의적 정체성의 일부라도 잃어버리는 혜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이 근친상간의 희생자라는 관념을 가지고 자신의 미스터리를 걸러내기 분주한 시간에 자신의 영혼을 일별한 시간이 있었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의 경험이나 심지어는 이 사건이 그의 발달 과정에 있어서 유별나게 중요하다고 믿는 그의 신념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스토리는 심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좀 더 복합적으로 감지될 필요가 있으며, ‘이런 경험을 했으니까 영원히 상처를 입고 살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의 견해뿐만 아니라 수많은 견해를 통하여 성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 대한 근본주의적 스토리가 있어서, 그런 이야기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열심히 믿는다. 보통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 익숙하여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을 꿰뚫어 보기가 어려운 법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고 확신을 갖게 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이 개별적으로 발전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분히 종교적, 도덕적 원리처럼 돼 버린 결의문이나 격언처럼 되도록 만든다. 초대 교회의 기독교 신학자들처럼 우리도 이런 이야기들을 들춰내어서 그 미묘함과 플로트의 구조와 장르와 시적 형태를 드러내게 해야 한다. 그것은 그런 이야기들이 비난받게 하거나 비신화화 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가치의 범위를 더욱 더 크게 드러내게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종교적 이야기를 하거나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똑같은 문제들은 자주 나타난다. 우리가 너무 자주 듣는 것은 결론과 이야기의 풍부한 세부 내용을 환원시켜서 모두를 압도하는 의미와 도덕률이 된 것이다. 융의 언어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아니마, 즉 그들의 삶과 숨쉬는 영혼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스토리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우리의 이미지를 도덕적으로 설명하는 일을 그만두게 하고, 이야기를 처음부터 제약시키거나 기울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 자체를 위하여 말하게 만든다.

가톨릭 신자들은 고백성사를 하기 때문에 정신과에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시사하고자 하는 것은 성서로 눈을 돌려 영혼의 본성에 대하여 큰 통찰을 얻으려는 사람은 심리학이 따로 필요 없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심리학은 성서보다 더 추상적이고 덜 이미지적이며, 더 과학적이고 덜 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돌봄에 대한 약속이 덜하다. 그러나 성서를 보면서 도덕적 확신과 믿음의 기적적인 증거와 삶의 선택들을 어렵게 만드는 일에 있어서 의심이나 불안을 기피하는 법을 찾는다면 그것은 통찰을 구하려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성서가 확신할 대상이다. 그러나 영혼에게는 성서가 종교적 상상력을 위한 커다란 자극제가 되며 가장 심오하면서도 가장 숭고한 가능성을 위하여 마음을 찾기 위한 큰 자극이 된다.

어느 날엔가 나는 ‘원형 심리학’이 전 세계로부터 모을 수 있는 종교 텍스트 속에 있는 영혼을 우리에게 보여주게 되기를 기대한다. 현재는 텍스트와 역사와 구조에 관한 연구, 즉 테크노 영성적인 이슈에 강조점이 있다. 소수의 신학자들, 특히 데이비드 밀러, 볼프강 기거리히, 그리고 린다 섹슨 같은 이들이 성서 연구에 원형적 상상력을 접목시켰으나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남아 있다. 무죄와 고난의 문제를 안고 씨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익숙한 주제와 인물들로 가득 찬 욥기 같은 책은 수없이 많은 극적인 버전 속에서 풍부한 상상력과 함께 열렸을 뿐 아니라 동시에 융의 심리학 연구에서도 새롭게 열렸다. 그러나 성서에 근거를 둔 사회로서 우리는 과연 에덴으로부터 추방된 리얼리티를 온전하게 느끼고 있는가? in illo tempore 즉 태초의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우리가 감히 낙원의 뱀과 이야기를 시도하였는가? 우리가 그 뱀을 우리의 가정과 도시들 속에서 인식하는가? 도대체 그 뱀과 우리들의 꿈속에 나오는 뱀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걸까? 우리가 주는 꿈이 내재적으로 성서나 토라와 무슨 상관이 있을 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찰이라도 하는가?

영혼이 자기 표현을 하는 복합적 수단이 그 깊이와 미묘함의 한 측면이다. 우리가 뭔가를 영혼 가득히 느낄 때 그것을 명백히 표현하기가 때로는 어려운 법이다. 당황한 나머지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여 그만 스토리나 이미지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쿠사의 니콜라스는 결론짓기를 우리는 종종 대안은 없고 다만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를 끌어안고 살 따름이다. 영혼은 지적인 이해보다는 관계성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에 영혼이 경험과 친밀한 데서 오는 지식은 거리를 두고 할 수 있는 일종의 분석보다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더욱 어렵다. 영혼은 늘 과정 속에 있으며, 헤라클리토스가 말하는 것처럼, 자기 나름대로 운동 원칙이 있다. 그래서 정의를 내리거나 고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못박듯이 말하는 것이 어렵다. 영성이 영혼과 이러한 가치들과의 접촉을 상실하게 될 때, 영성은 경직되고 단순해지며 도덕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으로 되는데, 이는 영혼의 상실을 무심코 드러내는 특성들이다.

잉그마 베르히만의 걸작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가 이런 차이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거기서 가정 생활의 생기 즉 화려한 친척들과 풍성한 음식과 축제의 분위기와 미스터리와 어둔 그늘을 경직된 권위주의적인 주교와 대조시킨다. 영화의 무드가 재미, 친밀, 외설스러움, 음악, 성격, 소속감, 그리고 가정의 따듯한 느낌으로부터 규칙, 고독, 형벌, 공포, 정서적 거리감, 폭력, 그리고 도피에 대한 희망으로 바뀐다. 명백히 말해서 주교라는 인물을 통하여 제시되는 것은 영성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으로부터 단절된 근본주의적 종교의 영이다. 왜냐하면, 심지어 최고의 엄격한 형태의 영성도 영혼 충만함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둔 생활을 하였던 토마스 머튼은 그의 유머와 웃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성 토머스 모어는 영성 수련의 일부로 맨몸에 거친 모직 옷을 입고 살았으면서도 위트가 있었고 강한 가족 간의 유대감이 있었고, 법률과 정치에 깊이 개입하였고 따듯한 우정을 지니고 살았다. 문제는 인간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성 그 자체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고, 영성과 영혼이 따로 분리될 때 일어나는 편협한 근본주의가 문제인 것이다.

영성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다. 우리가 가장 익숙한 영성은 초월의 영성으로서 최고의 비전과 보편적인 도덕률과 인간 생활의 수많은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을 높이 추구하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교회를 만드는 어린이들의 게임을 해 보라. “여기는 교회가 있고, 여기는 뾰족탑이 있다.” 거기서 우리는 초월적 영성에 대한 소박한 이미지를 얻게 된다. 그러나 “문을 열면 여기에 모든 사람들이 있다.” 하고 보면, 영혼의 내면적 다양성이 있다. 이것은 플라톤이 묘사한 동상과 같아서 겉에는 사람 얼굴이 있으나, 일단 열고 보면 그 속에는 모든 신이 내포되어 있다. 나무 한 그루, 동물 한 마리, 작은 숲 하나라도 모두가 종교적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다. 한 장소의 영성은 우물이나 땅바닥에 그린 그림이나 돌을 쌓아 놓은 것으로도 표시될 수 있다. 옛 전쟁터나 우리의 조상들이 태어난 집이나 조지 워싱턴이 잠잤던 곳 같은 데에다 역사적 표적을 남길 때, 우리는 순전한 영성적 행위를 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특정 장소에 붙은 특별한 영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