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3. 1)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52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신 화

아리스토파네스가 지은 소극 ‘개구리’에서 디오니소스 신은 죽은 시인 한 사람을 데려 오기 위해 지하계로 간다. 도시는 시가 점점 사라져 생기를 잃어가는 중이었고 최상의 해결책은 옛 시절 중 위대한 예술가 한 사람을 되살리는 것이다. 지하계에서 디오니소스가 만난 예술가는 에스킬로스와 유리피데스였다. 디오니소스는 두 예술가를 심판하여 에스킬로스를 불러내어 시적 기근에 깊이 빠져 있는 도시를 구하도록 한다. 두 예술가가 경쟁하는 과정에서 유리피데스는 한 줄을 해석하는 데 기대했던 함축성을 살리지 못해 실격 당한다. 그 한 줄은 ‘믿지 못할 사람을 믿을 사람으로 보고, 믿을 사람을 불신할 때’라는 구절로서 영혼을 상실한 어느 시간과 장소에서 들을 수 있는 횡설수설의 일부이다.

현재 우리의 문화적 상황은 희곡 ‘개구리’의 패턴과 꼭 들어맞는다.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깊이를 상실하고, 인생의 복합적이고 함축적인 측면을 묘사하기 위하여 유리피데스가 지옥에서 제시했던 것처럼 종종 앞뒤가 안 맞는 가벼운 언어를 쓴다. 우리도 역시 일상 생활의 시에 대한 잃었던 감상을 회복하고 그 깊이를 되찾는 데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복잡한 삶에 걸맞은 시 형식과 적절한 언어를 찾기 위하여 사절을 지하계의 깊은 곳으로 보낸다면, 결과는 어찌 나올까? 그리스의 비극 작가들이나 철학자들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특정 의미의 신화를 재생시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신화는 역사 밖의 시간과 장소에 자리매김이 되는 거룩한 이야기로서 자연과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진리를 허구적인 형식으로 묘사한다. 신화란 늘 인생의 부분이지만 문학이나 사실적인 이야기에는 나타나지 않는 불가시적이며 영원한 요인들에 구체적으로 몸을 입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인생담을 들려줄 때, 우리는 순수하게 인간적인 술어로 표현한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괴물이나 천사나 악마를 들먹이면서 뭔가 강렬하게 느꼈던 경험을 묘사한 때가 언제였나? 신화는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모든 인생을 형성하는 원형적인 문제를 반사시키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까지 뻗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나 고난을 이해하려 애쓸 때, 우리는 어떤 계시적인 이야기를 찾는다. 우리의 표피적인 설명은 보통 약점을 드러낸다.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눈길을 가족의 주제로 돌린다. 비록 우리가 어린 시절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내 생각에 우리가 이처럼 과거에 의지하는 것은 신화에 가 닿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심오한 감정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깊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족을 논할 때, 내가 보여주려 하였던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나 그 밖의 다른 식구들에 대한 기억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상상력의 행위라는 점이다. 아버지가 해주었거나 안 해준 것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실제 과거를 상기시키는 것과 동시에 누구라도 보호자, 안내자로서 그리고 확인자로서 영원한 아버지가 필요함을 묘사하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우리 실제로 살고 있는 신화의 중대한 부분이다.

지난 몇 해 동안 신화를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 많이 출현하였다. 사회가 보여주는 강렬한 반응은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상상하는 방식을 따라서 우리가 심층과 실체에 대하여 필요를 느끼는 것과 상관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세계 어느 곳에서 나온 신화일지라도 그것은 지구 위의 어느 곳에서라도 발견할 수 있는 인생의 근원적인 패턴과 주제를 생생하게 끌어낸다. 신화가 생긴 문화에 따라서 이미지는 특수할지라도 문제는 보편적이다. 이것이 신화의 가치이다. 그것은 인간 실존의 위대한 개개인의 차이를 날카롭게 가르며 관통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신화는 세상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다스려지는가를 묘사하는 우주론을 제공해 준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물리적인 우주에 대하여 오리엔테이션이 되게 하며 또한 상상력을 갖게 한다. 신화학자들이 주목해 온 것은 심지어 현대 과학이 그 모든 사실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가장 진실한 의미에서 우주론과 신화를 또한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은 ‘다만’ 신화라는 가설을 판단할 때처럼, 신화는 허위성을 내포하고 있다. 신화는 공상의 세계에서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상상이 수많은 신과 악마와 불가능한 행위와 비현실적인 배경으로 하여 종종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 속의 환상적인 요소는 그 장르에는 필수적이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일들로부터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한 요인들 쪽으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인생이 전개되는 보편적인 방식을 서술하는 데 있어서 신화는 범위를 매우 크게 잡기 때문에 자기 이해를 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길잡이가 된다. 희곡 ‘개구리’에서 디오니소스처럼, 적절한 시적인 이해가 부족하면, 우리 역시 억지로라도 지하 세계로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런 여행은 반드시 유쾌한 것이 아니다. 노이로제나 정신 이상이 그렇게 내려가는 것을 어두운 형태로 묘사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밝은 버전도 있다. 우리도 디오니소스가 그런 것처럼 지하 세계까지 위험한 여행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방법은 세계 방방곡곡에서 모은 신화들을 감상하는 것을 회복함으로써 과거에 신화를 만든 사람들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신화집은 신화와 똑같은 것이 아니다. 신화집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살고 있는 신화와 심층적인 패턴을 묘사하려 하는 이야기를 수집해 놓은 것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어른이 된 우리가 살고 있는 신화를 불러일으키듯이, 문화적 신화가 집합적으로 현대 생활 속에서 우리가 추적하는 신화적 패턴을 불러일으킨다. 외국 문화에서 가져온 신화까지도 날마다 우리가 심층적인 수준에서 다루고 있는 요인들에 대하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신화는 사회학이나 심리학이 허락하는 범주보다 훨씬 더 심오하게 상상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신화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대하여 조심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우리는 신화 속에 내포된 신비를 환원시켜서 우리 실존에 대한 탐구에는 이미 불충분한 현대 언어나 개념으로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신화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더 깊게 그리고 이미지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가 신화로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대의 신화는 사실과 정보와 과학적 설명으로 구성된 세계관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종교의 가르침이나 이야기는 다른 세계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와 과학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을 향하여 달려든다. 아마, 만약에 과학적 전망을 우리가 신화로 이해하였다면, 우리는 동시에 다른 신화도 고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화는 언제나 상상의 한 방식이다. 사실이 신화적인 이야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사실을 제외하면, 신화는 본질적으로 사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잘 기억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안내원이 있다. 그는 산등성이에 거칠게 입을 딱 벌리고 갈라진 곳을 가리키며 설명하기를, 악마가 땅을 한 입 크게 물어뜯어서 생긴 틈이라는 것이다. 신화는 종종 물리적인 증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다음에는 그것을 허구를 위한 뜀틀로 삼는데, 허구의 진실은 이야기를 만든 물리적 세계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삶과 가치에 관심을 둔다. 우리가 신화를 거슬러서 그 물리적 근거로 소급해가며 우리가 신화를 설명했노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에 의하여 야기된 오늘 우리의 감정이나 행동을 설명하려 할 때도, 똑같은 원리가 작용한다. 신화적 사고는 문자 그대로의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통찰력이 있는 상상을 찾는다. 과거를 고려하기는 하지만, 신화로서의 과거는 사실로서의 과거와는 다르다. 신화처럼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도 현재 속에 작용하고 있는 주제와 인물을 암시한다. 우리가 전적으로 역사 밖으로 나갈 만큼 먼 과거로 소급해 올라간다면, 예를 들어서 올림퍼스 신전이나 에덴동산까지 간다면, 인간 실존의 터전이 되는 근원적인 주제를 터치하게 된다.

신화의 깊이는 여러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평범한 인생의 한계를 넘어서 뻗어 나가는 시간의 의미 속에서 영혼은 가장 편하다. 영혼은 평범한 삶의 구체적인 일에 바탕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영혼은 영원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것은 시간과 영원에 대한 해석으로서, 수많은 종교가 탐구한 위대한 신비 가운데 하나이며, 그 자체가 많은 신화의 주제가 된다.

신화를 심리학적으로 읽으려 시도하는 현대의 작가들은 고대의 제의를 현재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자신의 서구 역사는 전통적 신화가 지닌 현대적 의미를 탐구하는 문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화를 우리 자신의 개념으로 축소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오히려 신화는 우리의 심리학적 사고의 폭을 확대시켜서 결코 완전하게 설명될 수 없는 인생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신비를 그 속에 포함시킬 정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상상력을 현대 심리학으로 번역하듯이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신화로 인해 상상력이 자극받을 수만 있다면, 신화는 심리학적 사고에다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

신화는 또한 우리가 나날이 살고 있는 심화를 감지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개개인으로서 특히 우리가 그 속에 있는 것을 관찰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우리의 모든 신화적인 깊은 이야기를 그리스나 로마의 이름으로 딱지를 붙일 필요는 없다. 신화(학)는 우리의 신화에 대한 도움이 되지만, 그 속에는 특수한 악마도 있고 신성한 존재도 있으며 자신이 갈 저승 풍경과 투쟁도 있다. 융이 우리에게 충고하기를 전통적 신화로 눈을 돌려 가지고 확대해서 우리에게 특수한 주제를 더 명백히 보고 더 예리하게 들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록 인생이 문자 그대로의 인과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사실은 우리가 깊은 이야기들을 종종 무의식적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정죄를 받아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살아내고 있다. 우리가 드라마 속에서 어떤 인물의 역물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우리는 신화 속에 잡혀 있다. 영혼을 위한 작업 속에는 우리의 삶의 근거를 형성하는 이런 신화들을 의식해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신화의 중심적인 등장인물이나 주제와 친숙해진다면, 우리가 그들 속에 사로잡힐 때 우리에게 덮쳐오는 강박충동과 맹목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면에서는 우리의 삶과 꿈속에 있는 이미지들을 탐구할 목적으로 일기, 꿈 일지, 시, 회화, 심리요법 같은 상상력을 실제로 활용하는 일의 중요성을 볼 수 있다. 이런 방법들은 우리 자신의 삶을 이루는 소재로서의 신화 속에 우리가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개입하게 만들어 준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드라마에 나오는 개구리들의 합창은 신화에 수용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제공한다. 개구리들은 양서류로서 땅 위에서도 살고 물 속에서도 살 수 있다. 희곡에서 그들은 디오니소스와 그 일행을 지하세계로 안내할 수 있다. 신화적인 삶의 영혼 충만을 우리가 즐기기 위하여 우리에게도 의미와 가치가 진정으로 형성되는 우리 자신의 심층을 알고 그 속으로 찾아들어 가게 해 줄 양서류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우는 소리를 듣고 디오니소스가 불평하니까 개구리들이 자신들은 팬과 아폴로와 뮤즈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 신들은 바로 음악과 서정시의 가치를 인정할 뿐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 있는 시적 감성의 기반을 이루어 주고 있는 신들이다. 시적인 의식이 없으면, 신화는 경직된 근본주의가 되고, 우리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가 될 뿐이다. 그러나 뮤즈의 도움으로 신화는 일상생활에 깊이와 통찰과 지혜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