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2. 1)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40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결국 빌의 우울증은 걷혔고, 그는 새 도시로 가서 상담자로서 그리고 사제로서 일하게 되었다. 그가 농신의 학교에서 진리를 배운 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났다. 전에는 그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면 의례히 어둔 감정을 헤치고 나오라고 적극적으로 권면했던데 비하여, 이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이나 감정을 솔직히 들여다 보도록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또한 존경심이나 안정감을 박탈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비극적인 이야기를 안고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실망이나 절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혼의 돌봄이란 것이 징후 속에서 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우울증으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영혼의 돌봄은 우울증이 지닌 특징들을 천으로 짜듯이 인생에다 짜 넣어서 농신의 미학, 즉 냉정, 고립, 어두움, 공허같은 것들이 일상 생활의 조직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우울증으로부터 배움에 있어서 사람들은 그 무드를 흉내내듯이 농신의검은 옷을 차려 입는다. 농신적인 감정에 대한 응답으로서 홀로 여행 길을 떠날 수 있다. 농신의 피난처가 될 것처럼 뒷뜰에다 한적한 정자(guotto)를 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더욱 내면적으로 살피자면 우울한 생각이나 감정이 그냥 있는 그대로 놔둘 수도 있다. 이 모든 행동이 그야말로 농신의 우울한 감정이 방문한데 대한 적극적인 응답이 될 수 있다. 이런 행동들이 어둡게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영혼의 돌봄에 있어서 구체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이러한 마음의 공허가 품고 있는 미스테리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우리가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울증이 그 자체 속에 천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를 안내하는 영이 있어서 영혼을 아주 먼 곳까지 데리고 가서 특유의 통찰을 거기서 발견하고 특수한 비전을 즐기도록 돕는다는 사실이다.

제 8 장 질병과 몸으로 쓰는 시

사람의 몸은 상상력의 무한한 자원이며, 상상력이 마음껏 노니는 마당이다. 몸이야말로 영혼이 가장 풍부하게, 가장 표현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우리는 영혼이 수없이 많은 형태로 몸에서 나타나는 것을 본다. 예를 들자면 제스처나 드레스, 움직임, 모양, 형상, 체온, 피부의 돌출, 턱, 질병 등으로 명료화되어 나타난다.
예술가들은 몸이 표현하는 힘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들을 해왔는데, 오달리스크에서 정식 초상화까지, 루벤의 살색 톤에서 입체파의 기하학적인 표현에 이르는 다양성을 드러냈다. 이와 반대로 현대 의학은 치료에만 열중한 나머지 몸에 내재하는 예술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현대 의학은 어떤 이상이 발견되면 그것이 지닌 의미를 읽어내려 하기 전에 그것을 모조리 제거하기를 바란다. 몸을 추상화시키며 화학과 해부로 처리하고 따라서 표현적인 몸은 그라프와 차트와 숫자와 구조적 도표 속에 숨겨진다. 어떤 질병이나 역기능적인 장기가 상징적으로 시적으로 암시하는 것에 관심을 두듯이 예술과 조화를 이루는 의학적 접근법을 한 번 상상해본다.
영양사와 콜레스테롤에 대하여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문제를 제기했었다. 심장이나 음식에 대한 나의 관계에 있어서 콜레스테롤이 그야말로 끝내주는 요인인 것처럼 관심사로 말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개인적으로 강력하게 저항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갖는 불안에 대하여 그에게 말하였다. "허지만 콜레스테롤이 주요 문제입니다."
그가 말하였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특별히 다이어트하면서 콜레스테롤을 컨트롤하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나는 콜레스테롤이 사실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말하였다.
"허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을 너무 지나치게 사실상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말이죠," 그가 계속해서 말하였다.
"아스피린을 하루 걸러 한 알씩 먹으면, 콜레스테롤의 나쁜 효과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콜레스테롤 때문에 아스피린을 규칙적으로 먹어야 한다고 권하는 겁니까? "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던가, 아니면 심장에 문제가 있으면, 물론 그렇습니다." 그가 확신을 가지고 말하였다.
"어째서 그렇죠? " 내가 물었다.
"그래야 더 오래 살죠." 그가 말하였다.
"그럼, 콜레스테롤과 싸우는 것이 죽음을 거슬러 올라 가는 것입니까? "
"그렇죠."
"그렇다면, 그게 죽음의 부정입니까?"내가 뾰족하게 물었다.
"나는 이반 일리치가 한 말을 기억하는데요, 그는 어떤 질병 때문에 죽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그는 죽음 때문에 죽기를 원했습니다."
"아마 그 말도 죽음의 부정이겠죠."
"이런게 가능할까요?" 내가 물었다.
"가령, 콜레스테롤 문제가 있을 경우에라도, 그것을 달리 상상해서 이를테면, 죽어야 할 운명과 씨름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감상할 수는 없을까요?"
"전혀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그가 말하였다.
"우리는 가설은 세우지만 문제는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몸을 대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가설은 세우는데, 그것에 대하여 성찰은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성찰하기로 말하면, 우리는 콜레스테롤을 다르게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문제가 교통이 혼잡한 고속도로와 비교해 볼 수는 없을까요? " 정신분석 학자인 그의 남편이 거들었다.
"아마 우리는 어디서도 혼잡을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시원하게 뚫리는 걸 열심히 바라지요. 길에서나 동맥 속에서도 마찬가지죠."
나는 그의 코멘트를 고맙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 말 때문에 우리는 문자 그대로의 화학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징후를 상징으로 취급하면서 문제를 전혀 다른 상황에서 볼 수 있는 렌즈로 삼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과적인 사고는 상상적인 성찰을 방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은유적인 비교를 보는 것은 몸에다 시적인 비중을 더해주는 시작이 된다. 여러 해 전에 제임스 힐먼이 달라스시에서 심장에 관하여 강연을 한 일이 있었다. 그가 정곡을 찔러 말하기를 심장을 기계적인 펌프나 근육이라고 상상하는 최근의 경향을 지나치게 좁거나 심장 질환이 많이 일어나는 데도 암시적으로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면, 우리는 심장이 용기와 사랑이 자리하는 곳이라고 영혼이 깃든 이미지를 잃어버린다. 심장을 사물로 생각한다면 산책 나가면서 가지고 가든가 가지고 달리면서 운동을 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닌 은유적인 힘을 잃어버리고, 하나의 기능으로 환원시키고 말게 된다. 힐먼이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강당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 한 명이 벌떡 일어섰다. 그는 조깅복을 입고 있었는데, 큰 소리로 불평하면서 하는 말이 "심장은 사실상 근육일뿐더러 잘 유지해야 심장마비에 안 걸린다" 는 것이었다.
힐먼의 요점은 우리가 수 세기 동안 시와 노래들이 애정의 자리매김으로 대해 왔던 심장을 단순히 신체적인 장기로만 대하게 될 때 오히려 심장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현대 사상으로 꽉 배어있는 우리가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들을 스스로 기억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심장은 하나의 펌프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문제는 사실에다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 구조를 통해서 보지 못한다는 것과 동시에 시적인 성찰을 넌센스로 취급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관점 자체가 심장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머리로만 생각하지, 더 이상은 가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힐먼의 동료인, 로버트 사르델료 또한 지적하는 바, 우리가 두뇌에는 지성과 힘을 부여하면서도, 심장은 근육으로 환원시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심장은 그 자체의 지성을 지니고 있다. 두뇌의 명령없이도 심장은 무엇을 해야할지 스스로 안다. 심장이 갖는 이유 가운데는 두뇌의 동정을 받을 것도, 안 받을 것도 있다. 심장은 그 나름대로 스타일이 있어서 사르델료가 지적하는 바, 격정이나 분노나 섹스를 할 때마다 각각 특별한 힘을 가지고 심장은 고동친다. 두뇌가 차가운 현실에 대하여 시원한 생각을 하는가 하면, 반면에 심장은 열띤 리듬으로 생각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수많은 장기가 지닌 기능과 형태에 대하여 은유적인 풍부함을 인정해 왔는데, 심장은 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영혼은 그 자리매김으로 비장과 간과 위장과 쓸개와 장과 뇌하수체와 폐에서 발견된다고 봤다. 영어 단어의 schozo- phrenia(조울증)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phrenes (폐)를 '잘라' 또는 '갈라' 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영혼에 대하여 중심이 여러 개인 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단순히 시적인 방종인가, 아니면 몸이 다양한 부분 속에서 갖는 힘인가? 힐먼과 사르델료가 암시하는 것은 고도로 정교화된 장기들에게 적절한 이미지와 정서를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 또한 몸의 기능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