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0. 11)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27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공동체적 사랑


영혼에게 가장 강력한 필요는 공동체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영혼의 시각에서 보면 공동 체는 사회적 공동체의 형태와 다른 것이다. 영혼은 애착(부착)과 인격의 다양성과 친밀성과 특수성을 갈망한다. 그래서 영혼이 공동체 안에서 열심히 찾아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 한 특성이지 생각이 같다거나 획일성 같은 것을 찾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를 충분히 깊게 경험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조짐이 많아 보인다. 공 동체를 정력적으로 찾는 노력이 있기는 하다. 마치 사람들이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가 보 고,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공동체에 대한 허깃증이 채워지기를 희망이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그들은 가정과 이웃의 와해를 한탄하며, 그 옛날 집에서 집 동네에서나 친밀성을 찾 을 수 있었던 황금기를 그리워한다. 고독이 주요 불만이며, 그것은 결국 절망과 자살을 고려 하는 데로 귀결되는 가슴 깊이 자리잡은 정서적 고통의 원인이다.

내가 아는 여성이 있었는데, 사교적이고 대화도 잘하고 많은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항 상 뭔가를 하고, 여기 저기 다닌다. 그러나 밤이 되어서 관심을 어딘가 돌릴 데가 없게 되 면, 귀신 같이 그의 고독이 나타나서 잠을 못 이룬다. 그는 큰 회사의 부사장이다. 그런데도 집에서 겪는 고독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항상 말하기를, 사람들이 얼마나 좋고, 친구들에 둘려 싸여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가 실제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기 때문에 그럴지는 몰라도, 이점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 하루는 그가 옛 친구를 찾아갔던 이 야기를 꺼냈다. 대화가 끝났을 때, 친구가 그를 껴안으려 하였는데 그는 뒤로 물러섰다. 그 가 생각하기에 이 여자가 공중 앞에서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었다. 혹 시 그 친구 양성연애자(bisexual)여서 자기에게 지분거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해하였다 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여성의 고독은 그의 삶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도 아무 상관이 없고 모든 일이 일종의 도덕주의적 자기보호 하고도 상관이 없었다 나중에 그가 나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해변에서 파티를 하고 있었다. 보통 때와 같이 그는 음식을 마련해 주고 접시도 치우면서 자신을 유용하게 만들었 다.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서 노래도 부르고 농담도 하고 그럴 때 그는 슬그머니 뒤로 빠져 어둔 데로 갔다. 그러나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 중앙으로 끌어냈다. 그는 핑계를 대고 도망 칠 줄 알았지만 마음속에서 뭔가 느슨해지면서, 어릴적부터 알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전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은 당황하였는데, 모두들 좋아하였다. 후에 느낀 것이지만, 그는 자신의 고독감에서 돌파구를 찾았던 것이다. 도덕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이상 으로부터 한 걸음 내려서서 공동체를 무방비 상태에서 순전한 마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르네상스기의 휴머니스트 에라스무스는 그의 책 "어리석음 예찬론"에서 사람들은 어리석 음을 통하여 친구들과 어우러진다고 말한다. 공동체는 너무 놓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높은 정신에서가 아니고 오히려 영혼의 계곡에서 융성한다. 내가 아는 사 제 빌이 자기가 속한 수도회에 관하여 나에게 자주 이야기하였는데, 그곳에서는 공동체가 신앙 생활에 관하여 교과적으로 그리고 피정 지도자들에 의하여 언제나 이상적인 모습으로 만 논의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이 자신의 삶을 돌아다보면 진짜 친구라고 생각할 사람은 동료들 가운데 별로 생각이 나지 않았고, 공동체 생활 한 가운데 항상, 고독 하게 느꼈을 뿐이다. 친밀해질 기회는 별로 없더라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서 나, 필경 스포츠에 대해서 이야기는 해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도조차 할 수 없었다. 빌은 말하였다. 개인적인 몸부림을 치는 한 가운데서, 특히 근심 때문에 숨막힐 것 같은 고통을 당하는 속에서 동료 사제들 틈에 앉아 있노라면, 날마다, 주로 듣는 말은 "양키즈 팀이 어떻게 된거야?" 하는 소리만 들었다. 이런 스포츠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면, "공동체"의 일부가 될 수 없었다.

고독은 사람이 어떤 식으로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 가 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자신을 공동체 식구들이 받아 들여 주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정작 그럴 때까지는 그들은 외롭다. 마치 가족들이 돌봐 주기를 기대하는 어린 아이 같은 면이 거기 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는 가정이 아니다. 공동체는 소속감에 의하여 함께 뭉쳐 있 는 일단의 사람들이며, 그 감정은 곧 장자권 같이 타고난 것이 아니다. "소속"은 능동적인 동사로서, 뭔가 우리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다. 피치노는 편지를 쓰면서 이런 말을 하였 다.
"인생의 보호자는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한다."
고독 감에 짓눌렸던 사람이 세상으로 나아가서 단순히 거기에 소속되기 시작한다. 어떤 조직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자연, 사회 그리고 세상 전체에 대한 관계성의 감정을 지니고 사는 것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다. 관계성은 영혼의 신호이다. 때때로 상처입기 쉬운 관계성의 감정을 허용함으로써 영혼이 삶 속에 퍼부어지는 것이지, 어떤 증상으로 자기 주 장을 해서는 안 된다.

영혼이 모든 활동처럼, 공동체는 죽음과 하계에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 도들의 교제(공동체)"는 인간 공동체라는 이유 때문에 관계되어 있는 현재와 과거의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죽은 사람들도 산 사람들 만큼 공동체의 일부이 다. 비슷한 정신으로 융은 그의 회고록 서문에서 신비한 코멘트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빠 짐없이 나의 회고록에 들어 올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내 운명의 두루마리 책에 처음부터 등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을 만나는 것은 동시에 회상이 되는 법이다." 외 적인 공동체가 번성하는 때는 내적인 인격(사람)들로서 꿈이 생시나 우리의 생각을 가득 채 우는 그럼 사람들과 접촉하며 살 때이다. 고독감을 이겨내기 위하여 우리는 이런 내적인 인 물들을 실생활 속에 풀어 내놓음으로써 마치 노래를 부르거나 아니면 화가 나서 욕설을 퍼 붓든가, 더 육감적이거나 더 비판적이거나 아니면 "내"가 인정하기 보다도 훨씬 더 궁핍한 사람을 끌어 낼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른다. 내가 누군지를 "인정"하는 것은 그런 (내적인) 사람들을 실생활 속에서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래야 내적인 공동체가 삶 속의 소속감의 출발점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을 "기억"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 상상력의 원초적 세계와 접촉하고, 그리고 자기 지식의 기초를 바탕으로 해서 내가 만나 는 누구라도 사랑하고 또 사랑을 되받을 수 있게 된다. 공동체의 뿌리는 헤아릴 수 없을 만 큼 깊고, 소속의 과정과 고독을 능동적으로 다루는 과정은 영혼의 심층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영혼을 자신의 운명의 궤적을 따라가게 하며 영혼의 무한대한 범위인 심연의 가 장자리에 의식이 자리하게 한다. 이 말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영혼의 사랑에 대하여 중 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정반대로, 영혼에 대한 사랑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 의 평범한 인간적 사랑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품위 있게 된다. 이 가정, 이 친구, 이 연 인, 이 짝이 인생 자체의 동기를 부여하는 힘의 표현인 것이며, 영혼을 살아있게 그리고 충 만하게 유지하는 사랑의 원천이다. 인간적 친밀성과 공동체성을 발견하는 것을 통하지 않 고는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는 길은 없다. 서로가 먹여 줄 뿐이다.

그렇다면, 영혼의 돌봄은 사랑의 많은 형태에 대한 개방성을 요구하는 것이리라. 사람들 이 심리치료를 받으러 안고 오는 수많은 골칫거리들은 그 뿌리나 표현이 사랑 속에 자리하 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문제로 고통을 당할 때 사랑이 관계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영혼의 사건임을 기억하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사랑에 있어서의 실망이나, 심지어 는 배신과 상실은 인생에 있어서 비극으로 보일 바로 그 순간에도 영혼에게 봉사한다. 영혼 의 일부는 시간 속에 일부는 영원 속에 있다. 우리가 인생 속에 있는 부분에 대하여 절망을 느낄 때, 영원 속에 자리하고 있는 부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