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2000. 10)
영혼의 돌봄 (Care of the Soul) 26
토마스 무어 / 김영운 옮김
사랑의 그림자
우리가 사랑의 그림자를 다루지 않는다면, 우리의 사랑 경험은 불완전하다. 감상적인 사 랑의 철학은 오로지 로맨틱하거나 적극적인 면만을 끌어안기 때문에, 그림자의 첫 번째 조 짐, 즉 이별(분리)에 대한 생각, 관계에 있어서 믿음과 희망의 상실 또는 상대방의 가치관의 예기치 못한 변화 같은것에 부딪히면 그만 실패하고 만다. 그러한 부분적인 견해는 또한 불 가능한 이상과 기대를 안겨준다. 만약 사랑이 이러한 이상을 붙잡지 못한다면, 사랑은 부적 합하다는 이유로 망가진다. 우리의 예술과 문학 유산에서 보면 사랑은 종종 눈이 가리워진 상태나 또는 다루기 힘든 사춘기로 묘사된다는 사실을 나는 즐겨 명심한다. 본질적으로 사 랑을 부적합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부적합성은 사랑의 광범위한 정서를 둥글 둥글 하 게 만들어 준다. 사랑의 영혼은 불완전성이나 불가능성 그리고 미완성 속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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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요법사로서 나는 그야말로 사랑의 그림자에 너무 익숙한 편이다. 한 사람이 돌봄과 치유를 얻으려는 생각으로 치료를 받으러 온다. 그리고는 치료사와 사랑에 빠진다. 바로 그 상황 -정기적인 만남, 호젓한 밤, 친밀한 대화 등- 은 이졸데의 사랑의 묘약 만큼이나 효과적이고 강력하다. 환자는 치료사에게서 어떤 반응이 있다고 해봐야 별 것 아니라는 강 한 정서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왜 저한테는 선생님의 생활에 관해서 말씀을 안 하세요. ?" 환자는 절망에 빠져서 말할 것이다. "선생님은 거기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뚝 떨어져 앉아서 선생님의 전문성으로 보호 받으며 계신데, 저는 속을 다 쏟고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 상처 입도록 놔두고서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허지만 선생님은 저를 사랑하지 않으셔요. 저는 한 줄로 꿴 연인들 가운데 하 나죠. 선생님은 틀림없이 관음증 환자예요."
우리는 어떤 사람들, 특히 교사나 매니저나 간호사 그리고 비서 같은 어떤 전문직에 있 는 사람들과 사랑의 판타지에 쉽게 빠진다. 이런 사랑이 영혼에게는 리얼하다. 그러나 삶 의 정황속에서는 그다지 진실성이 없다. 심리 치료를 받을 때나 약을 쓸때나 교육을 받을 때면, 보살피는 대화와 친밀한 고백과 혼자서만 경청하는 일들 때문에 사랑이 끌려 나온다. 남에게 경청하고 그들의 복지에 관심을 나타내는 일은 위로하는 경험이 되어서 누가 보지 않을 때는 사랑의 마법적인 후광이 내리 비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사랑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드메투스는 아폴로의 특혜를 받는 출중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아폴로신이 곤경에 빠졌을 때 도움을 준 일 이 있기 때문이다. 보상으로 그는 죽음을 비켜 설 수 있는 방법을 받았다. 죽음이 그를 하 계로 데려 가려고 왔을 때, 아드메투스는 누군가 자기 대신에 들어서서 자기를 위하여 죽어 줄 사람들 찾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는 오랜 세월을 행복하게 산 양친 부모에게 자기 대신 죽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그들은 합당한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 그러나 그의 부인 알케 스티스는 동의를 하고 죽음의 신을 따라서 갔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때마침 영웅 헤라클레 스가 방문중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그는 죽음의 신을 쫒아가서 그와 더불어 씨름을 하 였다. 그 때 베일을 한 여인이 하계로부터 나타났는데, 그는 헤라클레스에게 구출된 알케스 티스를 보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읽은 바로는, 사랑에 대한 심오하고도 불가해한 미스테리를 말해 준 다. 사랑은 늘 죽음에 가까운 관계를 지니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 이야기는 아내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것으로 읽혀졌다. 그러나 그 해석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 을 때, 여성 혐오증이나, 피상적인 굴종으로 귀결된다. 내 생각에는 알케스티스의 죽음이 연 못에서 죽은 나르시서스의 죽음과 더욱 비슷한 것이다. 사랑은 우리의 인생으로부터 데리고 나가서 우리 인생을 위하여 세운 계획들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한다. 알케스티스는 영혼이 지닌 여성적인 얼굴의 이미지인데, 그 영혼의 운명은 인생에서 벗어나서 죽음과 하계로 상 상되는 심연을 향하여 움직이게 되어 있다.
사랑과 결혼에로 자신을 떠넘기는 것은 죽음에 대하여 "예" 하는 것과 같다. 굴복은 인생에 있어서 상실을 수반하지만 동시에 영혼에게는 이득도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르쳤 듯이, 영혼은 하계에서 제 집처럼 편히 머문다. 사랑은 자아와 인생을 위하여 어떤 이익을 제공해 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영혼은 죽음과 사랑이 맺는 친밀한 관계에 의하여 살 찐다. 의지와 제어의 상실을 사랑 안에서 느낄 때, 그로 말미암아 영혼에게는 고도로 자양 분이 공급될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랑에 있어서 죽음의 측면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의 지상 세 계의 가치관과 기대치는 손상되며, 책임질 필요와 모순이 된다. 죽음이 나타날 때, 우리 모 두는 아드메투스의 부모처럼 될 수 있다. 그래서 초대를 거절하는 데 탁월한 핑계를 댈 수 있다. 결국은, 나에게도 계획이 있고 편안한 라이프 스타일이 있는데, 내가 어째서 모든 것 을 영영 바꿀 이 사랑에 지고 들어가야 할까? 우리는 동시에 영웅적으로 될 수도 있다. 헤라클레스처럼, 죽음의 손아귀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것을 빼앗기 위하여 씨름을 할 수도 있다. 내 마음속에는 사랑의 요구에 굴복할 용의가 있는 알케스티스가 들어 앉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에는 그런 생각만 해도 화가 나서 펄펄 뛰며 있는 힘을 다하여 죽음 과 싸우는 헤라클레스가 들어 앉아 있을 수도 있다.
그밖에도, 이 이야기는 결말에 가서 양가적으로 엇갈리며 미스테리 같이 된다. 이 알케 스티스가 저 아래로부터 정녕 돌아오는 것인가? 그는 왜 얼굴에 베일을 쓰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사랑 때문에 잃었던 것을 억지로라도 삶 속에 되살려 놓았을 때, 우리가 얻는 것은 이전의 리얼리티의 그늘에 불과한 것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아마 우리는 결단코 영혼을 생명에로 회복시키는 데 있어서 완전히 성공하는 일은 없을지 모른다. 그는 아마도 항상 베 일을 쓰고 있거나,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실생활의 고초로부터 보호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은 전적인 굴복을 요구한다.
심리요법적인 시도에서 우리는 인생을 성공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헤라클레스처럼 행동 하며, 영혼을 죽음으로부터 구하려 한다. 우리는 한 사람을 우울증에서 건져내서 적극적인 방식으로 인생을 살게 하려 할 때, 그것은 바로 헤라클레스가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베일을 쓴 영혼과 대면하게 되는데, 그는 환경에 순응하지만 동시에 위장을 하고 영 혼 속에서 왜곡된 모습을 참아내야 한다. 아니면, 우리가 약물의 수단으로 도와서 한 사람을 생활에 복귀하도록 도울 때, 우리가 종종 보는 모습은 그 사람이 산 사람들 속에 돌아오기 는 하였으나 얼굴은 마법의 신령한 힘으로 살려낸 사람(zombie)의 얼굴로서, 이는 헤라클레 스가 생명을 회복시킨 여인과 다를 바가 없다. 생명을 대신하여 싸우는 영웅적 투쟁에 대 한 대안은 우리들 속에 있는 알케스티스 같은 것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아래로 내려갈 용 의가 있어서 운명이 영혼에게 요청하는 것이라면 뭐라도 견딘다.
우리는 이론적으로나 실생활의 에피소드에서나 사랑이 뭔가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생 각한다. 그러나 사랑은 영혼의 하계에 있는 미스테리한 어둡고 움푹한 곳을 향하여 기울어 진다. 그 완성은 죽음이요, 그것은 뭔가 일어나기를 우리가 기대하는 것의 시작이라기 보다 는 차라리 이 시점까지 인생이 어떻게 이어져 왔던가 하는 것의 종말에 더 가깝다. 사랑을 우리가 알고 경험한 바의 가장자리로 우리를 끌어간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사랑에 동의하 고 죽음을 가장한 그를 기꺼이 동행하려고 할 때면 언제나 우리는 알케스티스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