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데, 성서를 고전으로 읽는 사람들이 성서속에서자아를 발견하고, 정체성을 확립하고, 인류애 또는 인간애를 발견하고, 인간가족 human family의 연대성을 발견하고 진선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와 마찬가지로 성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이며 읽는 사람들이 성서 속에서 문화와 종교, 특히 사회, 정치, 경제의 현실을 보면서 성서의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몸부림치며 살았던가를 밝히 읽어내고, 나아가서는 억압과 착취에 항거하며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투쟁한 모습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서라는 책을 고전으로 읽든지 또는 경전으로 읽든지, 성서를 백과사전처럼 대하면서 정답을 구하거나 더욱이 즉답을 찾으려는 태도로 읽을 것이 아니라, 정문 正問을 묻는 자세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이런 뜻에서 성서가 어떤 책인가 하는 단면을 보여 주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제네바에 있는 한스-뤼디 웨버의 사무실에 가면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목조각이 눈길을 끈다. 거기에 담긴 일화가 있다. 큼직한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아프리카 여인을 보고 사람들이 놀려댔다. “어째서 밤낮 성경책이야?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그 여인은 한결같이 성경책을 지니고 살았다. 놀리는 사람들 때문에 조금도 짜증내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여인은 사람들이 모인 한가운데서 웃는 사람들 앞에 당당히 무릎을 꿇고 성경책을 높이 치켜들고 말하였다. 시원스레 미소지으며 하는 말이 “그래요. 세상에서 읽을 책이란 아주 많아요. 하지만 나를 읽어 주는 책이란, 이 세상에 성경책 밖에 없어요.”

그렇다. 이 이야기는 성서가 어떤 책인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성서가 한권의 책으로 우리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듯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치 그 책을 해부하듯이 쪼개고 분석하고 비평하고 해석한다. 왕성한 지적 작업과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일 수록 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보고 지식을 얻는다. 그러나 문제는 다시 복원시키고 총체적으로 파악하며 그 성서가 지닌 힘을 만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상태로 끝나는 데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성서 앞에 자기자신을 드러내고 그 성서가 자신의 고민과 희망을 읽어 주고, 고난과 기쁨의 현실을 읽어주고, 내면의 중심을 읽어 주는 것을 경험할 때, “성서가 나를 읽어 주는 책이다” 하고 외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