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충 본문은 상충되는 그대로 받아드리자.
아직 사울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협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고 하였다. 그는 예수의 도(道)를 믿는 이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송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고, 그 때 그는 땅에 엎 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래 서 사울이 "주여 뉘시오니이까" 하고 여쭈었더니, 그 음성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울과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었 다"(행 9:7)고 한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도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사도행전을 쓴 이가 바울의 체험을 전기(傳記)의 형식을 빌어 기록한 것이다 (행 9:1-9). 같은 사건에 대한 자서전(自敍傳)적 기록이 사도행전 22장에 나온다. 여기에서는 같은 사건을, 사울이 자신의 체험을 직접 진술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울이 다메섹 가까 이 이르렀을 때에, 정오 때쯤에,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자기를 둘러 비추었고, 자기는 땅 바닥에 엎어졌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 다. 그래서 "주여 뉘시니이까" 하고 여쭈어 보았더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고 대답하시더라는 것이다. 그 때 사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사울에게 말 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행 22:9)고 사울은 진술한다(행 22:5-11). 앞의 전기적 기록에서는, 사람들이, '소리를 듣기는 했으나 그 소리를 발하는 이는 못 보았다'고 한다. 뒤의 자서전적 기록에서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고 한다. 같은 사건에 대하여, 사도행전의 기자는, 사람들이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반하 여, 사울 자신은, 사람들이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는 것이다.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1) 일 점 일 획도 틀림이 없는 성서 안에 어떻게 이런 서로 충돌(衝突)하는 본문이 있을 수 있는가? 서로 다른 책도 아닌 같은 {사도행전} 안에서 어떻 게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진술이 있을 수 있는가? 2) 둘 중에 하나는 틀린 진술일 터인데 어느 것이 옳은 진술인가? 실제로 한 독자는, 사도행전 9장과 22장에서 이 상충하는 기록을 발견하고서, 성서 자체 의 기록이 틀렸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틀림없이 번역 과정이나 인쇄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 한 것으로 판단하고, 대한성서공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 준엄하게 책망한 일도 있다. 성서 주석들이나 번역들은 일찍부터 이 문제에 착안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 해 왔다. 하나는 어떻게 하든지 이런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충되는 본문이 이것 하나만이 아니므로 그대로 둔다는 입장이다. {성경전서} 안에는 상충 본문이 많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마치신 날은 "여섯째 날" (창 1:1-31)인가 "일곱째 날" (창 2:2)인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는 날에 는 먹은 사람이 죽는다고 했는데 (창 2:17), 아담과 이브는 그 과일을 먹었는데도 죽지 않았 고 (창 3:7), 오히려, 아담의 경우는 930세까지 살다가 죽는다 (창 5:5). 다윗이 무찌른 아람 군대의 병거 수가 "700"으로 나오기도 하고 (삼하 10:18), "7,000"으로 나오기도 한다 (대상 19:18).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조사를 하도록 부추긴 이가 "여호와"로 나오는가 하면 (삼하 24:1), "사단"으로 나오기도 한다 (대상 21:1). 예수께서 여리고에서 고치신 맹인이, 한 곳에 서는 "둘"이고 (마 20:29-31), 다른 곳에서는 "하나"이다 (막 10:46-47; 눅 13:35-38). 이런 예는 신구약전서를 통해서 보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도행전 안에 사울의 다메섹 경험은 9장과 22장 외에 26장에도 기록되어 있다. 26장 14절에 보면, 소리가 들려 올 때 사울과 그의 일행이 "다 땅에 엎드러졌다"고 진술되어 있 는데 반하여, 9장 7절은 그 일행이 그대로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떤 주석들은, 9장 7절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의미 없는 "소리"만 들 은 것이고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듣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라고 하여 22장 9절과의 상충 을 피해보려고 하지만 바람직한 시도는 아니다. 상충본문은 그대로 두자. 신비한 경험을 객 관적인 언어로 진술할 때 생기는 일종의 "한계(限界)"라고 볼 수도 있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이 지닌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민영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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