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 목사님, 평안을 빕니다. 제가 읽어 본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무엘기상 17장 48-49절을 보면 다윗이 물맷돌 하나로 중무장을 한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의 이마를 맞추어 죽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일찍이 어렸을 때부터 교회 유년주일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다윗이 골리앗을 물맷돌을 던져 그의 이마를 맞추어 죽였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늙은 나이에 최근에 <새번역 성경전서>(2004)로 성경을 다시 통독하다가, 사무엘기하 21장 19절에서 골리앗을 죽인 것이 다윗이 아니라 엘하난이란 사람이란 것을 알고 너무나도 이상하여 설명을 좀 듣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민 영진 목사님, 저 지금 굉장히 머리가 복잡합니다. <새번역>을, 그동안 늘 읽어오던 <개역>(1956)과 비교해보다가, 거기에는 또,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인 것이 아니라,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다는 말이 나와서, 저 지금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깜놀램 드림

깜놀램 선생님께,

1. 본문비평

1) 상충된 본문

성경에서 상충 본문을 발견하시고서 “돌아버릴 것 같”은 충격을 받으신 깜놀램 선생님께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새번역>(1993/2004)으로 성경을 읽는데, 같은 성경 안에 서로 모순되는 본문이 나온다고 하셨습니다(삼상 17:49과 삼하 21:19). 다른 번역은 어떤가 하고 <새번역>과 <개역>(1956/1961) 번역을 비교해 보았더니, <개역>에는 <새번역> 성경에는 없는 또 다른 내용이 첨가 되어 있는 것을 보셨다고 하셨습니다(삼하 21:19). 그래서 깜짝 놀라신 것 같은데요, 제가 지금 한 구절 더 역대지상 20장 5절을 소개해 드리면 또 놀라실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또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벌어졌다.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라흐미의 창 자루는 베틀 앞다리같이 굵었다.”(새번역 대상 20:5)라고 하여 골라앗의 아우가 라흐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세 곳의 본문을 비교해 보면 다들 조금씩 다릅니다. 사실 史實은 무엇일까를 묻게 됩니다. 어떤 진술은 옳고 어떤 진술은 틀렸다면 이것을 어떻게 구별할까요?

2) 본문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독 誤讀과 오기 誤記

무엇보다도, 히브리어로 적힌 구약 성경 본문이, 필사자 筆寫者들이 베껴 적는 필사 筆寫 과정에서 고의든 실수든, 필사자가 본문을 잘못 읽는 오독 誤讀이 생길수도 있고, 필사자가 본문을 잘못 적는 오기 誤記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성경 본문 내용이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 아연실색 啞然失色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저도 걱정이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번역자들이 이런 문제를 풀어본다고 하여 같은 사건의 서로 다른 진술들을 조화 調和시켜 또 다른 본문을 만들어 내면, 또 다른 문제가 함께 발생하여 논란이 계속되기도 합니다.

3) 본문 복원을 위한 본문비평

고전문학 古典文學 연구에서는 비평가들은 문헌전달 과정에서 필사자의 오독 誤讀과 오기 誤記의 가능성을 일단 인정하고, 그것을 검토하여 본래의 본문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본문비평(本文批評, textual criticism)이라고 합니다. 귀하께서 제기하신 문제, 골리앗은 누가 죽였는가 하는 질문과 관련된 문제의 세 본문(삼상 17:49; 삼하 21:19; 대상 20:5)을 비교하면서 그 잠정적 결론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완전한 해답이라기보다는 한 가능성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앞으로 이 방면에서 다른 사본이 더 발견되거나 다른 연구가 더 진행된다면 결론은 또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골리앗은, 다윗이 죽였다(삼상 17:49)

사무엘기상 17장 41-54절은 구약성경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대면에 관한 첫 번째 진술입니다. 선생님께서 읽으신 사무엘기상 17장 49절에는 히브리어 본문 전달 과정에서 생긴 필사상의 문제도 없고, 이독 異讀을 지닌 다른 사본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언어 번역들을 살펴도 표현의 차이들만 있을 뿐, 당연히 내용의 차이는 없습니다.1) 다만 <고대 그리스어 칠십인역>(LXX) 하나에서만 “그 돌이 골리앗의 투구를 통과하니”라는 정보 情報가 더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히었다. 그 돌이 투구를 통과하니 골리앗이 이마에 그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칠십인역 삼상17:49) 2)

여기 “투구”란 “예전에, 군인이 전투할 때에 갑옷과 함께 머리에 쓰던 쇠로 만든 모자”(국어사전)입니다. 헬멧 helmet이라고도 하지요. 이 말이 <고대 그리스어 칠십인역> 번역자의 첨가인지, 번역자의 히브리어 대본(對本 / Vorlage)의 반영인지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3. 사무엘기하 21장 19절의 본문비평

- 야일/혹은 야엘의 아들 엘하난은 골리앗의 아우를 죽였다.

1) “야레오르김”은 “야레/혹은 야일”로 복원한다.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은 사람 이름으로는 예사스럽지 않습니다. “야레오르김”은 사람 이름 ‘야레’에 “베틀”을 뜻하는 ‘오르김’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있을 수도 있는 이름이지요. 하지만, ①이 이름이 오직 사무엘기하 21장 19b에서만 나타난다는 점, ②평행본문인 역대지상 20장 5절에서는 ‘오르김’이 없이 ‘야우르’라고 적혀 있고(케티브), 읽을 때는 ‘야이르’(케레)[우리 음역 ‘야레’]로 읽으라는 마소라 지시가 있다는 점, ③ 야레오르김’의 ‘오르김’은 바로 가까운 문맥에 나오는 낱말 ‘오르김’(“베틀”)의 중복오사(重複誤寫 / dittography)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야레오르김 Jaareoregim’은 ‘야레 Jaare’로 복원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2) “골리앗”은 “골리앗의 아우”로 복원한다.

엘하난이 죽인 적장 敵將이 골리앗인가, 골리앗의 아우인가? 현재의 사무엘기하 21장 19절은, 히브리어 본문이나, 그 본문을 문자 그대로 번역한 여러 언어 번역을 보면, 깜놀램 선생님께서 이미 확인하신 것처럼, “베들레헴 사람인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이 진술은 역사적으로 올바르지 않습니다. 골리앗은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다스릴 때 이웃 나라 블레셋의 장수였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다윗은 아직 아버지의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 때 다윗이 형들을 만나러 전쟁터에 갔다가 우연히 적장 골리앗을 상대하여 물맷돌로 그를 죽입니다. 이것이 사무엘기상 17장 49절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지금 곱에서 이스라엘이 다시 블레셋과 전쟁을 하는 사무엘기하 21장 19절의 역사적 배경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블레셋과 싸우는 전쟁입니다. 여기에서 골리앗이 다시 나타난다면 그는 소년 다윗의 물맷돌을 맞고 죽은 골리앗과 동명이인 同名異人이거나, 아니면 엘하난과 다윗이 이명동인 異名同人이어야 합니다. 둘 다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본문비평이 확인하는 것은 사무엘기하 21장 19절과 그 평행본문인 역대지상 20장 5절, 이 두 곳에 일찍부터 심각한 본문의 와전 訛傳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기하 21장 19절에서는 “골리앗의 아우를”(‘아크 골리앗’)이라는 본문을 “골리앗을”(‘에트 골리앗’)이라고 잘못 읽었거나 잘못 기록했거나 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비평은 평행본문 역대지상 20장 5절을 따라 “골리앗을”(‘에트 골리앗’)이라고 된 본문을 “골리앗의 아우를”(‘아크 골리앗’)이라고 바로잡습니다. 본문비평은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가 함께 뒷받침해 줄 때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킹제임스역>을 따르는 소수의 번역이 번역 과정에서 엘하난에게 죽임을 당한 블레셋의 장수가 “골리앗”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골리앗의 아우”로 고치고, “-의 아우”를 이탤릭체 brother of로 표기하여 이것이 히브리어 원문의 반영이 아니라 사무엘기하 21장 19절의 평행본문(平行本文/ parallel passage)인 역대지상 20장 5절에서 가져온 번역자의 첨가 添加임을 밝힙니다. 이것은 평행구절이나 관련 구절을 참고하여 잘못 전해진 본문을 교정한 경우입니다.

[복원된 삼하 21;19] 19 또 곱에서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일어났다. 그 때에는 베들레헴 사람 야레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를 죽였는데, 골리앗의 아우가 쥔 창 자루는 베틀 앞다리같이 굵었다. (복원 삼하 21:19)

4. 역대지상 20장 5절 본문비평

“야일”은 삼하 21:19를 따라 “베들레헴 사람 야일”로 복원하고,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는 “골리앗의 아우”로 복원한다.

현재의 히브리어 본문 역대지상 20장 5절의 내용은 우리말 <새번역>에 다음과 같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골리앗의 아우의 이름이 라흐미로 밝혀져 있는 것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벌어졌다.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라흐미의 창 자루는 베틀 앞다리같이 굵었다. (새번역 대상 20:5)

골리앗의 아우의 이름 “라흐미”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본문비평을 히브리어 본문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하기가 좀 어렵습니다만, 결론만 말씀드리기로 한 것이니까,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라흐미”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는 오직 역대지상 20장 5절에서만 나오는 이름인데, “라흐미”는 사람 이름이 아닙니다. 단 한 번만 언급된 것이어서 사람 이름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고, 이것은 히브리어 자음본문 ‘베트할라흐미’(“베들레헴 사람”)를 ‘에트라흐미’(“라흐미를”)라고 잘못 읽은 것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이미 우리말 <개역>(1956/1961)에서 확인하신 것처럼, 우리말 <구역>(1910), <개역>(1938/1956.1961), <개정>(1998)의 사무엘기하 21장 19절은,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다고 그 이름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작은 활자로 인쇄하여 “-의 아우 라흐미”가 히브리어 본문의 반영이 아니고 평행본문 역대지상 20장 5절에서 가져온 번역자의 첨가 添加임을 밝힙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구역>(대영셩셔공회, 1911), <개역>(죠션셩셔공회, 1938) <개역한글판>(대한성서공회,1956,1961), <개정>(대한성서공회, 1998) 외에도 <쉬운성경>(아가페, 2017), <우리말성경>(두란노, 2014), <바른성경>(성경공회, 2007), <현대어성경>(성서원, 1991) 등이 “-의 아우 라흐미”를 첨가하였다.

[복원된 대상 20:5] 또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벌어졌다. 베들레헴 사람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를 죽였는데, 골리앗의 아우가 잡은 창 자루는 베틀 앞다리같이 굵었다.(복원 대상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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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개의 우리말 번역들도 표현상의 차이만 있을 뿐 내용은 다 일치한다. 혹시나 해서 YouVersion에 나오는 영어 번역 60여 가지, 번체중문역 繁體中文譯 8가지, 도이치어 역 11가지, 프랑스어 역 13가지 등을 다 비교해 보아도 내용상의 차이는 없었다.
2) LXE 1 Samuel 17:49 And David stretched out his hand to his scrip, and took thence a stone, and slang it, and smote the Philistine on his forehead, and the stone penetrated through the helmet into his forehead, and he fell upon his face to the ground. (1Sa17:49LXE); “그 돌이 투구를 통과하니”(κα? δι?δυ ? λ?θο? δι? τ?? περικεφαλα?α?, “the stone penetrated through the helmet”)라는 말이 번역자의 첨가인지, 번역자의 히브리어 대본(對本 Vorlage)의 반영인지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Spence-Jones, H. D. M. (Ed.). (1909). 1 Samuel (p. 325); Bergen, R. D. (1996). 1, 2 Samuel (Vol. 7, pp. 196?197).
3) 우리말 번역에서는 <구역>(대영셩셔공회, 1911), <개역>(죠션셩셔공회, 1938) <개역한글판>(대한성서공회,1956,1961), <개정>(대한성서공회, 1998) 외에도 <쉬운성경>(아가페, 2017), <우리말성경>(두란노, 2014), <바른성경>(성경공회, 2007), <현대어성경>(성서원, 1991) 등이 “-의 아우 라흐미”를 첨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