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 교수님,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은퇴 하고나서 지금은 오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한 성경 본문도 다른 환경에서 곱씹어가며 다시 읽다가보니 또 새로운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창세기 27장, 이삭이 자기 두 아들 에서와 야곱에게 축복한 사건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삭이 아내 리브가와 작은아들 야곱의 계략 計略에 넘어가, 맏아들 에서에게 베풀어주기로 한 축복을 작은아들 야곱에게 해주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이삭과 에서가 무척 당황하게 되지요. 이삭은 이미 야곱에게 (비록 속아서 해주긴 해도) 축복을 해 주었다고 말합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해준 그 똑같은 축복을 자기에게도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에서에게 해주기로 한 축복을 야곱이 이미 가로채가 버렸으니 어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에서는 (그 똑같은 축복이 낭패로 돌아갔다손 치더라도)“아버지, 아버지께서 비실 수 있는 복이 어디 그 하나뿐입니까? 저에게도 복을 빌어 주십시오, 아버지! (창 27:38) 라고 하면서 다른 축복이라도 받고 싶어 합니다. 제 질문은 간단합니다. “한 번 한 축복은 취소할 수 없는가?” 혹은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축복은 제한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산에서 안희선 드림

안희선 목사님,

학생 때나 목회할 때나 은퇴한 지금이나 늘 어려운 질문만 하시는 군요. 나는 창세기에서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본문을 향해 도전적인 질문은 잘 안했던 것 같습니다. 동생 야곱이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챘을 때, 이삭이 자기가 잘못 베푼 축복을 회수 回收하고, 그 똑같은 축복을 에서에게 다시 해주면 될 게 아니냐고, 이런 의문을 제기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안희선 목사님은 “한 번 한 축복은 취소할 수 없는가?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축복은 제한되어 있는가?”라고 물으셨지만 나는 아마도, “한 번 한 축복은 취소할 수 없고,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축복은 제한되어 있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희선 목사님의 질문을 받고 보니 정말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를 느낍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창 27장)를 잠시 한 번 더 구체적으로 소환해 보겠습니다. 이삭이 늙어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된 어느 날의 이야기입니다. 이삭이 자기 맏아들 에서를 불러, 사냥을 해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별미 別味를 만들어 가져오면 그것을 먹고, 자기가 죽기 전에 맏아들 에서에게 마음껏 축복 祝福하겠다고 말하지요. 남편 이삭과 맏아들에서, 이 두 사람의 대화를 이석의 아내 리브가가 엿듣지요. 남편의 축복이 작은아들 야곱에게 가기를 바란 리브가는 에서가 사냥을 나간 사이, 작은아들 야곱더러 염소 두 마리를 끌고 오라고 합니다. 자기가 남편 이삭의 식성을 잘 아니까 별미를 만들 테니까, 야곱이 그것을 아버지 이삭에게 가져다 드리고 아버지 이삭에게서 형에서 대신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라고 꾑니다. 그러나 야곱은, 형 에서는 몸에 털이 많고, 자기는 피부가 매끄러워 아버지가 만져 보면 당장 들킬 터인데, 그렇게 되면 아버지를 속인 죄로, 축복은커녕 오히려 저주 咀呪를 받을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주저합니다. 어머니 리브가도 끈질깁니다. 들킬 경우, 저주는 어미인 자기가 받을 터이니, 야곱더러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 어서 가서, 염소 두 마리를 끌고 오라고 재촉합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끌고 온 염소로 남편 이삭의 입맛에 맞게 별미를 만들고, 맏아들 에서의 옷을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염소 새끼 가죽을 야곱의 매끈한 손과 목덜미에 둘러 주고 나서, 자기가 마련한 별미와 빵을 작은아들 야곱에게 들려주고,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가서 형 에서의 행세를 하면서, 별미를 가져가서 축복 받기를 간청합니다. 시력이 약해진 이삭은 퍽 용의주도用意周到합니다.

1) 이삭은 에서가 그렇게 빨리 사냥을 해다가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이 수상하여 자초지종 自初至終을 묻습니다.
2) 에서의 설명을 듣고 난 이삭은 두 아들의 신체적 특징을 아는 터라 직접 몸을 만져 확인합니다.
3)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라고 하면서, 미심쩍기는 하지만에서 같다고 판단하고 그에게 축복을 해주기로 합니다.
4) 축복해 주려던 그 순간, 그래도 미심쩍은 이삭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아들을 확인합니다. "네가 정말로 나의 아들 에서냐?"고, 야곱이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이런 확인 단계를 거친 다음에 이삭은 별미를 먹고서, 아들에게 마음껏 복을 빌어줍니다. 이삭이 야곱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서, 그가 맏아들 에서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27 나의 아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주님께 복 받은 밭의 냄새로구나.
28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슬을 내려
주시고, 땅을 기름지게 하시고,
곡식과 새 포도주가 너에게
넉넉하게 하실 것이다.
29 여러 민족이 너를 섬기고, 백성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는
너의 친척들을 다스리고, 너의
어머니의 자손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마다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사람마다 복을 받을 것이다.”
(창 27:27-29)

이삭은 이렇게 야곱이 에서인줄 알고 그에게 축복하여 줍니다. 축복을 받은 야곱이 아버지 앞에서 막 물러나오는데, 사냥하러 나갔던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한 것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에서는 역시 별미를 만들어서, 그것을 들고 자기 아버지 앞에 가서, 자기가 사냥하여 온 고기를 차려놓고서, 자기에게 마음껏 축복하여 달라고 말합니다.

눈이 어두운 이삭이 에서더러 누구냐고 묻습니다. 에서는 자기가 에서라고 밝힙니다. 비로소 사태를 파악한 이삭은 크게 충격을 받습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더듬거립니다. “그렇다면, 네가 오기 전에 나에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 온 게 누구란 말이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그것을 이미 다 먹고, 그에게 축복하였으니, 바로 그가 복을 받을 것이다.”(창 27:33). 이 말을 들은 에서는 소리치며 울면서, 아버지에게 애원합니다. “저에게 축복하여 주십시오. 아버지, 저에게도 똑같이 복을 빌어 주십시오.” 그러나 이삭이 말합니다. “너의 동생이 와서 나를 속이고, 네가 받을 복을 가로챘구나.” 에서가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저에게 주실 복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 “아버지, 아버지께서 비실 수 있는 복이 어디 그 하나뿐입니까? 저에게도 복을 빌어 주십시오, 아버지!” 그러자 아버지 이삭이 맏아들 에서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해주었던 그 똑같은 축복은 아닙니다. 아니, 이삭의 말이 비록 저주 咀呪는 아니라하더라도 야곱에게 했던 축복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39 네가 살 곳은 땅이 기름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슬도 내리지 않는
곳이다.
40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 것이며, 너의
아우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애써 힘을 기르면, 너는, 그가 네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
(창 27:39-40).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번 한 축복은 취소할 수 없다는 것”,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축복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에서가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저에게 축복하여 주십시오. 아버지, 저에게도 똑같이 복을 빌어 주십시오.” 라고 간청한 것을 보면, 에서 자신도 자기 아버지 이삭이 자기에게 야곱에게 준 것과 똑같은 축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축복하였으니, 바로 그가 복을 받을 것”(창 27:33)이라고 말한 것을 보거나, “그 축복을 야곱이 가로챘다”(창 27:35)고 말한 것을 보면, 축복이 이미 축복 선언자를 떠났기 때문에 이삭도 야곱에게서 그 축복을 도로 거두어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저에게 주실 복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창 27:36) “아버지, 아버지께서 비실 수 있는 복이 어디 그 하나뿐입니까? 저에게도 복을 빌어 주십시오, 아버지!”(창 27:38) 라고 말하면서 다른 축복이라도 남아 있으면 받고 싶다고 한 걸 보면, 에서 역시 “한 번 선언된 축복은 회수할 수 없다는 것”과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축복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