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햇순>을 통해서 교회력 敎會曆이란 것이 있다는 것, 매주 구약에서 두 곳, 신약에서 두 곳, 합해서 네 곳의 성경본문을 제시하는 성서일과 聖書日課가 있다는 것, 네 본문을 읽을 때 여러 번역을 비교하여 읽고, 소그룹 참여자들은 그 주일에 읽은 성경 본문에 대해 각자가 소감을 말하거나 의외로 발견한 점을 서로 나누고 고백하는 바, 소위 “몸으로 읽는 공동체성경공부”라는 것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한 마을 교회에서 오랜 동안 설교를 해 오고 있는 목사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햇순>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여기에서 배운 대로 교회력에 따른 네 본문 중심의 설교를 시도한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력의 주제와 네 개의 성경본문을 연결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 單純히 교회력을 따르는 설교가, 복잡다단 複雜多端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적절한 메시지를 주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 때 그 때 우리 사회에 맞는 시사적 時事的 설교를 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요? 설교어려워 드림

설교어려워 님,

“시사적 時事的 설교”라는 귀하의 표현이 오늘따라 참으로 참신하게 들립니다. 설교가 시사적이어야 한다는 데 저도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삼일절, 6.25 한국전란,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과 같은 우리의 역사적 체험이나 추석이나 구정 같은 우리의 명절 부근 주일에 교회력에 따른 설교만 하고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친다면 성경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듣지 못하지요. 구체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교통 군사 안보 등과 같은 시사 문제와 하나님의 통치를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설교의 완성도가 미흡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성경과 신문/방송을 인위적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무리일 수 있지만 설교에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가 빠지는 것은 더 큰 문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에서 귀하께서 말씀하신 “시사적 설교”라는 표현이 참신합니다.

제가 참석하는 주일예배에서는 저는 으레 교회력을 따라 성서일과를 본문으로 하여 선포되는 설교를 듣는 편입니다. 그러나 때로 설교자가 아마도 “설교어려워” 님께서 체험하시듯이 네 본문의 융합이 어색할 때도 있고, 그 메시지가 우리가 체험하는 현장에 연결되는 것 같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도 네 본문을, 비록 따로 따로 일지라도, 새롭게 모두 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것대로 귀한 체험입니다. 네 개의 본문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도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니, 오히려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하는 것, 때로는 그 본문이 우리를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것 같은 체험을 하는 것처럼 들려 올 때도 있다고 하는 것이 지나놓고 보면 크나큰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설교자는 그냥 본문만 설명했을 뿐인데, 감동은 청중이 제각기 스스로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첨가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자가 주일 예배 때 자기가 수행하는 설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잠시 문제 삼고 싶습니다. 왜 설교를 하십니까? 무엇을 설교하십니까? 사사건건 시사 문제에 대한 논객이 되어 명쾌한 대답을 청중에게 해주시려 하십니까? 청중을 철학과 인문학과 신학과 문학으로, 혹은 귀하의 사견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여 청중을 감동시키고 싶어 하십니까? 수준 높은 교양과 성경 지식으로 설교자 자신이 무장하고서 청중에게도 똑같은 무장을 시키고 싶으신 겁니까? 현직에 있는 전문가들도 해결 못할 문제에 어떤 지혜나 해결이나 최종적인 답안을 주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까? 혹시 설교자의 그러한 갸륵한 시도가 하나님의 백성을 오도한다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신약교회 설교자들은 똑 같은 사실만을 증언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구약에서 말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2) 예수께서 세례 洗禮를 받으실 때 하나님에게 메시아로 기름부음 받으셨다.
3) 세례 洗禮를 받으신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부터 사역을 시작하셨다.
4)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자비 慈悲 와 선행 善行과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 能力을 베푸시는 사역 使役을 하셨다.
5)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계획을 따라 메시아가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다.
6) 예수께서는 부활 復活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7)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높이시어 “주”라는 칭호를 주셨다.
8) 예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게 하셨다.
9) 예수께서는 심판 審判하시고 만물 萬物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다시 오신다.
10) 설교를 들은 사람은 지금까지의 삶을 회개 悔改하고 세례 洗禮를 받고, 용서 容恕 받고, 성령 聖靈을 선물로 받는다.

이것을 신약학에서는 “케리그마”(설교)라고 합니다. 이것을 설교하기 위해 교회는 교회력을 만들었습니다. 강림절, 성탄절, 현현절, 사순절, 수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이 바로 케리그마를 뼈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주 성서일과 네 본문은 교회력과 관련된 메시지를 선택하여 하나님나라 백성이 읽고 명상하고 깨닫고 실천하게 하게 합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교회는 교회력 끝, 성령강림절 끝에 왕국절, 혹은 창조절을 첨가하여, 교회가 증언해야 하고 선포해야 할 설교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와 창조세계의 보전 保全과 보존 保存을 첨가한 것입니다. 이 “케리그마”의 범주 안에 빠진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력의 주제들이야말로 영원한 시사 時事가 아닙니까?

민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