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05/2007

 

 

 

 

 

 

 

 

 

 

 

 

  성서 난해구 해설

 

번역자여, 그대는 반역자다.

 

 

 

 

 

 

  겔 22:27의 번역 컨설팅

 

 

 

 





민영진 목사

-목사
-시인
-햇순편집위원
-대한성서공회 총무
-세계성서공회 아시아태평양지역이사회 의장
- 세계성서공회연합회 이사
-yjmin@bskorea.or.kr










 


라오스 교회는 지금 자기들이 보고 있는 성서를 개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5년째 거기 번역 컨설턴트 일을 보고 있습니다. 지난달, 라오스교회총회본부 건물의 번역실에 들렀을 때 라오어 문체 담당자 분번 부인이 에스겔 22장 27절을 펴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산사회에서 성서 번역과 개정이 때로 어떤 문제에 봉착하며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 지를 볼 수 있는 한 대목을 여러 독자들께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민영진 (대한성서공회 총무)

분번: “닥터 민, 이거 한 번 읽어 보실래요?”
민: “왜요? 라오 번역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분번: “번역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문체나 어휘를 포함해서 라오어 표현을 좀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민: “분번 부인께서 이 라오 번역문을 그대로 영어로 한 번 번역해 주시겠습니까?”
분번: “뜻은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정부의 고위 공직자라는 것들은
이리떼와도 같아서,
탈취한 것 물어뜯고,
부정축재 하려고 인민을 학살한다.’

민: “정말 혹독한 예언입니다. 히브리어의 의미를 라오 말에서도 아주 역동적으로 잘 살린 것 같습니다.”
분번: “닥터 민, 저는 지금 이 본문의 번역의 잘 잘못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제게 번역 자체를 비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닥터 민께서 더 잘 아시니까요.”
민: “그럼, 뭐가 문제지요, 분번 부인?”
분번: “이 번역 이대로는 출판을 하기가 곤란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민: “곤란하다니요?”
분번: “라오스에서 아직 우리의 신앙의 자유는 제재 制裁를 받고 있어요. 당 黨이 정부보다 더 위에 있어요. 우리는 당이나 정부, 혹은 그 인사들을 비난할 수 없어요.”
민: “제가 왜 그걸 모릅니까? 이 나라는 ‘라오스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요.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이지요. 그것하고 에스겔 22장 27절의 이 번역이 무슨 관련이라도 있고 문제라도 있단 말입니까, 분번 부인?”
분번: “이 본문이 이대로 나간다면 우리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할 수 있어요. 저는 이 번역이, 닥터 민이 말했듯이, 히브리어 본문의 의미를 잘 전달한다고 믿고 싶어요. 그러나 우리 당의 고위공직자들이 이 본문을 보고 트집을 잡으면 이런 번역이 들어 있는 성서를 보급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도 있어요.”
민: “에스겔 22장 27절은 에스겔 예언자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지도자들, 사회의 지도계층에 있는 이들을 규탄하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분번: “제가 그걸 왜 모르겠어요. 그러나 단순한 우리 독자들이 이런 본문을 읽을 때 이것이 그대로 우리 당이나 정부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알 수 있어요. 지금 겨우 신앙의 자유를 조금 얻어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런 본문이 그대로 나갔다가는 어떤 불행한 사태가 초래될지 몰라요. ‘라오스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정부 고위 공직자란 모두 공산당 당원들인데 고위층 당원 黨員을 비난하는 것은 곧 당 黨을 비난하는 것인데,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여기는 한국이 아니에요. 이것이 에스겔 당시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규탄이라고 설명은 할 수 있지만 당이나 당원들이 그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을 거구요. 또 더욱이 인민 중에는 바로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여 당과 정부를 공격할 수도 있어서 더욱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그렇게 되면…….”
민: “정부 당국이 이런 번역이 들어 있는 성서를 회수해 갈 거고, 교회가 문을 닫게 되는 지경까지도 갈 수 있다는 것입니까?”
분번: “그러니까 표현을 좀 달리하여 불필요한 화를 피하겠다는 겁니다.”
민: “분번 부인,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지요? 아예 이 본문을 삭제해 버려요?”
분번: “닥터 민, 지금 농담하자는 건 아니잖아요.”
민: “분번 부인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분번: “우선 할 수 있는 것은, 이 초역을 그대로 출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민: “그러면 고쳐서 출판하자는 건데, 어떻게 고치지요?”
분번: “제 생각으로는, 옛날 번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민: “옛 번역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분번: “번역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체가 다르고 어휘도 다르지요.”
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십시오.”
분번: “처음에 나오는 ‘정부’라는 말 대신에 ‘나라’를 쓰고요, ‘고위공직자’ 대신 ‘(왕이 임명한) 관리들’ ‘임금의 신하들’ 정도로 하고요, ‘인민을 학살한다’ 대신에 ‘영혼을 멸하려고 피를 흘린다’ 정도로 했으면 좋겠어요.”
민: “분번 부인, 놀라운 제안입니다. 낱말을 모호한 고어 古語로 바꾸고 히브리어를 직역하여 현대 라오어 독자들에게 본문을 위장 僞裝하는 실력이 놀랍습니다.”
분번: “이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의 처리는 할 줄 알아야 하지요. 거창하게 ‘지혜’랄 것도 없지만요.”

기독교의 종교 활동을 허락받은 그 범위 안에서 그들은 상당 기간 동안 본문을 왜곡하거나 위장하는 방법으로 성서를 번역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문제가 되는 성서 본문의 뜻을 충분히 파악하고 그것을 현대 라오어로 번역하여 예언자의 신탁을 뜻 그대로 옮길 경우, 당이나 정부로부터 배반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번역본문을 위장하거나 본문을 왜곡한다면, 번역비평가들은 그것을 오역이라고 지적할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번역자들은 이탈리아의 저 유명한 격언을 듣게 될 것입니다:
“번역자여, 그대는 반역자다! 뜨라두또레 뜨라디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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