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서공회부총무)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부총무)
민 영진 목사님께,
왕하 4:39의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역?을 보면 “한 사람이 채소(菜蔬)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野藤) 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 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라고 되어
있고, 같은 본문이 ?개역개정판?에서는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야등’이란 들에서 자라는 ‘등나무’를 일컫는 것인데, 등나무에서 오이를 딴다는 ?개역? 번역도 그렇고, ‘들포도덩굴’에서 ‘들호박’을 딴다는 ?개역개정판?의 번역도 그렇고,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 정말 연목구어(緣木求魚)가 가능한 것입니까?
안태근 드림
왕하 4장 39절은 번역하기 어려운 본문 중 하나입니다. 귀하께서 지적하신 그런 모순은 히브리어 원문 자체 안에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이 본문을읽는 독자들 역시 여기에서 어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오로트(채소)’를 구하러 들에 나갔다가 ‘게펜 사데(들포도 덩굴)’를 만나서, 거기에서 ‘파쿠오트 사데(들 외)’를 따서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개역?이나 ?개역개정판?은 이러한 히브리어 문장을 그대로 우리말 번역에 무리하게 반영하였습니다. 그래서 귀하께서 제기하신 것과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귀하께서 영어 번역들을 참고해 보셔도 같은 문제가 있는 것을 곧바로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영어 번역들 중에 거의 모든 번역들이 우리말 ?개역?이나 ?개역개정판?처럼 논리적으로 난해한 히브리어 본문을 번역에서 그대로 노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KJV를 보면, ‘채소(herbs)’를 구하러 들에 나갔다가 ‘들포도(a wild vine)’를 만나서, 거기에서 ‘들 박(wild gourds)’을 따서 가지고 옵니다. 대다수의 영어 번역이 이런 번역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피한 것이 우리말 ?공동번역?이나 ?표준새번역?입니다. 이 두 번역은 모순되는 단어를 번역에 반영하지 않음으로서 어려움을 제거하려고 하는, 번역상의 조정을 한 것입니다. [공동번역 성서] 들에 푸성귀를 뜯으러 나갔던 사람들 중 하나가 들포도덩굴을 만나 옷자락에 가득 뜯어 가지고 돌아 와서 무엇인지도 모르고 썰어 국솥에 넣었다.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한 사람이 나물을 캐려고 들에 나갔다가 들포도덩굴을 발견하고서, 그 덩굴을 뜯어, 옷에 가득 담아 가지고 돌아와서,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채로 국솥에 썰어 넣었다. 영어 번역 중에서도 더러는 ‘채소(green plants)’를 구하러 들에 나갔다가 ‘들포도(a vine of the field)’를 만나서, 거기에서 ‘그 열매(the fruit of it)’를 따서 가지고 옵니다. 내용상 모순은 없지만, 히브리어 본문의 반영은 아닙니다. 번역에 따라서는 ‘채소(vegetables)’를 구하러 들에 나갔다가 ‘들 박(wild gou- rds)을 따서 가지고 옵니다. 역시 내용상 모순은 없지만 히브리어 본문의 정확한 반영은 아닙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그대로 반영하면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고, 번역 과정에서 난해구를 조정하면 히브리어 본문을 축자적(逐字的)으로 반영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두 가지 상이한 번역은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느 것이 더 좋은 번역이라는 평가는 유보됩니다. 다만 히브리어 ‘게펜 사데’를 ‘야등(野藤) 덩굴’이라고 하고, ‘파쿠오트 사데’를 ‘들 외’라고 번역한 것이 옳은 지는 물을 수 있습니다. 우선, ‘야등(野藤)’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우리말 사전의 올림말에 올라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생소한 말입니다. 다만 한자를 풀이하여 그것이 ‘들에서 자라는 등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게펜 사데’는 일반적으로는 ‘들에서 자라는 포도’입니다. ‘외’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파쿠오트’입니다. ‘외’는 ‘오이’의 준말입니다. 그러므로 ‘들외’란 ‘들 오이’라는 말입니다. ‘오이’는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풀입니다. 덩굴손으로 감아 뻗으며, 여름에 노란 꽃이 핍니다. 열매는 원기둥 모양이고 황갈색으로 익습니다. 그런데 영어 번역들을 보면, 모두 ‘파쿠오트’를 ‘오이’를 뜻하는 cucumber라고 번역하지 하지 않고, ‘박’을 뜻하는 gourd라고 번역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민영진 드림
민영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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