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 성서 난해구 해설 (2000.5)

기념비, 하난가 둘인가?
수 4:9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부총무)

구약의 본문을 여러 번역으로 비교해서 읽는 한 독자가 여호수아기 4장 9절의 히브리어 본문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번역판마다 이 부분의 뜻을 달리 번역하였다는 것 이다. 이야기의 배경과 문제의 발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여호수아기 4장을 1절부터 18절까 지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널 때 매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이 나와 서 요단강 가운데에서 돌 열 둘을 가져다가 숙영지(宿營地)로 옮겨놓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도강을 마치면, 숙영지에다가 도강을 기억할 기념비를 세울 계획이다. 그러나 번역판들마다 이 본문 번역에 있어서 의미 차를 나타내고 있어서 독자들이 혼란을 느낀다.
본문 전체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도강을 마친 후에 그 기적적인 도강 사건을 기념하 고 후대에도 오래 오래 알리려고 강 가운데서 돌을 가져와 그들의 숙영지에다가 도강 기념 비를 세운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니까, 기념비의 재료가 되는 돌은 요단강 가운데에서 가져 오고, 기념비 자체는 숙영지에 세운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바로 9절의 진술 때문에 독자들은 혼돈을 느낀다. 4장 전체의 문맥을 보면, 기념 비는 숙영지에 세워지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9절을 보면 기념비가 세워지는 장소는 숙영 지가 아니다. 요단강 가운데 수중(水中) 기념비로 세워지고 있다. 그래서 기념비가 1) 숙영지이든 요단강 수중이든 둘 중에 한 곳에만 세워진 것인지, 2) 두 곳에 따로 따로 두 개가 세워진 것인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결이 시도되고 있다.

1) 하나는 문맥 전체에 모순이 발생하더라도 히브리어 본문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다. {킹제임스 번역}이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번역하면, 여호수아의 기념비 건립이 하나냐 둘이 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2) 다른 하나는 9절 첫 낱말에 붙어 나오는 접속사 "와우"를 확대 해석하여 두 곳에 기 념비를 세운 것 같은 의미를 끄집어 내는 것이다. 우리말 {개역}이나 {표준새번역}의 번역 이 그러하다. 기념비를 숙영지에 하나 세우고 또 강 가운데에도 하나를 더 세운 것으로 번 역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 둘을 세 웠더니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 ({개역} 수 4:9)

여호수아는 요단 강 가운데, 언약궤를 메었던 제사장들의 발이 머물렀던 곳에다가도 열두 개의 돌을 세웠다. (그 돌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다.) ({표준새번역} 수 4:9)

3) 셋째 해결 방안은 영어 {신국제역 (New International Version)}의 것이다. 기념비 는 한 곳, 곧 숙영지에만 세우고, 거기 세운 기념비의 재료인 돌은 요단강 가운데서 가져온 것이라는 이해를 반영한다.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여호수아는 열 두 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웠다. 그 돌들은 언약궤를 메었던 제사장들 의 발이 머물렀던 곳 요단강 가운데 있던 돌들이다. (그 돌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 다.) ({표준새번역} 수 4:9)

4) 그런가 하면, {신개역표준판(New Revised Standard Version)} 같은 것은 9절이 전 체 내용과 맞지 않는다고 하여, 문자대로 번역한 본문을 괄호 속에 담아 묶었다. 문제를 무 리하게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문제를 문제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다.

5) 고대어 번역들은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리스어 칠십인역과 라틴어 불가타역은 여호수아가 두 곳에 따로 따로 기념비를 세웠다는 점을 아주 분명하게 밝힌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요단 강 가운데, 언약궤를 메었던 제사장들의 발이 머물렀던 곳에 다가도 또 다른 열두 개의 돌을 세웠다. 그 돌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다. (그리스어 {칠십인역}과 라틴어 {불가타} 수 4:9)

문제가 되는 우리의 본문에 대하여 현재까지 이상 다섯 가지 서로 다른 접근이 시도되 었다. 택일할 것이 아니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